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을 노론에 초점을 두고 이해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인식에 한몫 한 것들 중 하나가 조선은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라는 것이었다. 임금은 약하고 신하들이 강한 나라라는 것이다.
영조가 노론의 공세와 협박일 수 있는 강경 주장을 물리쳤다면 비극적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했다.
다소 애매하고 절충주의적인 눈으로 영조, 노론, 사도세자의 관계를 보아온 것이다.
사도세자가 미쳤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덕일 소장의 책을 읽고 전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난 책이 김태형 님의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이다. 저자에 의해 개진된 바 사도세자가 지극히 정상적이었음은 물론 살신성인적 인물이라는 글은 설득력면에서 최고이다.
사도세자가 살인성인적이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나주벽서 사건과 토역경과 사건을 계기로 이 사건과 무관한 소론 전부를 마구잡이로 죽이려 한 영조와 노론에 맞서 살신성인적 행동을 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실제로 심리적 병에 기인해 극단적으로 수직상승하던 영조의 폭주는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서서히 하강했다.
영조의 미친 학살의 만행에 죽음을 무릅쓰고 제동을 건 사도세자는 영조와는 너무 다른, 희생양을 자처한 의인이다.
열한 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뒤 살해 위협에 시달렸던 정조가 비슷한 처지의 연산군과 달리 개혁군주, 학자군주가 된 것을 훌륭한 부모 밑에서 생애 초기와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으로 보는 등의 정조에 대한 저자의 치밀한 분석 역시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영조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에 의하면 영조는 미천한 출신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숱한 괄시(恝視)와 박해를 받는 것을 보며 여성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에 기반한 종(從) 여성적 태도 및 남성 불신(마마보이적 인간 유형)과 열등감을 가졌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이나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는 외향감각적 정체성도 가졌다.
영조는 ˝경이 비록 백번 머리를 깨트리더라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당인들을 갈아 마시겠다.˝ 같은 말을 상시적으로 할 만큼 난폭하고 공격적이었다.
노론과 한 패가 되어 경종(景宗)을 핍박해 후계자로 등극한 죄책감(저자는 영조가 이복형 경종;‘ 장희빈의 아들‘을 독살했을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심증을 제시한다)도 영조가 보였던 주요 특징이다.
영조는 돌려치기, 떼쓰기, 변명과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흔히 사용했다.
저자에 의하면 영조는 죄의식과 열등감을 방어하기 위해 아들의 안위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냉혹함,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행동을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지만) 억울함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도세자를 비웃고 조롱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노론이 난리를 쳤지만 사도세자를 죽인 것은 결국 영조였다. 교활(狡猾; 간사하고 나쁜 꾀가 많음)한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노론에 책임을 전가했다.
˝중증 환자˝ 영조는 아들을 죽인 죄를 씻고 아들을 죽이게 만든 노론에게 복수하는 길로 세손 정조를 왕으로 만들어주는 것을 택했다.
영조는 혜경궁 홍씨(한중록에 남편 사도세자를 정신병자로 기록한, 정조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종(從) 여성적 태도를 보였다.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 사도세자가 열다섯에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고, 그리고 자신 앞에서만 그랬다고 썼는데 저자에 의하면 그런 갑작스런 발병은 있을 수 없다.
또한 공적인 자리에서는 그렇지 않고 오직 한 사람(혜경궁 홍씨) 앞에서만 증세를 보인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극한적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고 의연했던 사람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는가.
혜경궁 홍씨는 남편 사도세자 살해에 책임이 있는 친정의 무고함을 강변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해 ‘한중록‘을, 그것도 젊어서가 아닌 노회한 나이에 의도적으로 썼다.
혜경궁 홍씨가 택한 것은 남편을 버리고 임금이 될 가능성이 있는 아들 산(蒜; 정조의 이름)이었다.
심리학자가 개인 또는 개별 사건에 대한 미세하고 정치(精緻)한 분석에 능하다면 역사학자는 큰 틀을 잡고 사태를 거시적으로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능한 것일까?
어떻든 적어도 정조와 사도세자, 영조 등을 분석하는데 있어서는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가 최고임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