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묘수를 찾는 삶, 자신의 존재로 인해 할아버지 영조가 부친인 사도세자를 죽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안 뒤 크나큰 한과 자책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신원을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유훈을 어겨야 했지만 다른 죄목을 들어 사도세자 살해 가담자를 처벌한 정조의 선택은 묘수의 대표 사례일 것입니다.
영조가 열등감 때문에 국정을 완벽하게 하려는 강박적 성향을 가졌고 그로 인해 결국 아들을 죽이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논의가 노론의 패악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두 요소(만이 아니겠지만)의 결합이 하나의 거대한 비극을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정조와 철인 정치의 시대‘ 두 권을 읽었습니다. 소설적 구성이 진실을 드러내는데 유효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조의 석연치 않은 죽음 이후 정순왕후 김씨가 대리청정을 하게된 이래 정조대에는 없었던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또 한번 역사의 비극을 실감합니다.
세종에 비하면 성종, 영조, 정조 등은 에피고넨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이한우 기자)도 있지만 평탄했던 시기를 복처럼 누리며 많은 업적을 쌓은 세종보다 한스럽고 위험했고 난감했던 조건을 딛고 많은 일을 한 정조가 어떤 면에서는 더 위대해 보입니다.
정순왕후가 정조의 병석에 나타남으로써 남자 신하들은 다 물러나고 정순왕후 홀로 정조의 마지막을 입회한 안타까운 사연은 이덕일 소장이 전하는 바이지요.
조선은 의사도 아닌 성리학자들이 임금의 건강을 체크한 성리학 유일사상을 고수한 이상한 나라였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한 한의사 이상일의 ‘왕의 한의학‘에 의하면 정조는 한의학의 대가였지만 인삼든 경옥고를 먹고 절명했다고 말합니다. 독살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이상일 한의사도 정조가 자신의 의사와는 다르게 강제 처방된 인삼을 먹고 혼수상태에 빠진 뒤 절명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노론의 영수 심환지와 입장을 같이 하는 어의 심인의 연훈방 처방과, 정순왕후의 독대에 의한 흉계쪽에 더 높은 비중을 둡니다.
이제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사도세자의 고백‘의 개정판)를 읽기 전에 심리학자 김태형의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읽기이지요...당연히 저자가 아닌 정조를 위한 것입니다. 정조가 펼친 정치로부터 어떤 교훈을 끌어낼지 모르지만 당분간 정조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성리학의 폐쇄성이나 독단적 면모, 오류 등을 이론적으로 규명해 노론이 끼친 폐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과제는 오랜 숙제입니다.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에서 정조가 성리학 일변도의 학풍을 고치려 했고 어떤 나이든 성리학자 신하들보다도 학문적으로 더 뛰어났었다는 말을 듣고 더 더욱 생각하게 된 바입니다.
두서 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설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