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양자(量子) 뿐 아니라 과학에 별 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에 평행 우주를 소재로 한 아즈마 히로키의 장편 소설인 ‘퀀텀 패밀리즈(quantum families)‘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한 때 오컴의 면도날과 브레너의 빗자루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오컴의 면도날은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때 면도날은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잘라내는 도구를 상징한다.

반면 브레너의 빗자루는 스스로 탁월한 아이디어나 명쾌한 통찰을 지녔다고 믿는 사람은 먼저 과감히 발표한 뒤 미해결되거나 채 이해되지 않은 것은 빗자루를 이용해 양탄자 아래로 쓸어버리면 된다는 생각이다.

신학자이자 철학자 오컴(Ockham)과 분자생물학자 브레너(Brenner).

과학을 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오컴의 면도날과 브레너의 빗자루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대립이 책 읽기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현 국면에 바로 도움이 되는 이슈 분석을 위해 소용이 되는 책들만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대비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책들이라도 다소 헤프고 무분별하게 읽을 것인가, 이다.

그런데 현재만을 보거나 미래만을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이슈가 있다면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읽을 것인가, 가 아닐지?

하지만 이 역시 현명한 문제 설정이 아니다. ‘나‘는 사회 속의 존재이고 사회의 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즈마 히로키가 사회비평서인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에서 시도한 오타쿠 분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오타쿠를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PC, SF, 특수촬영, 피규어(figure: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입체조형물) 등의 서브컬처에 탐닉하는 사람들이라 설명한다.

아즈마는 오타쿠들이 허구를 중시한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그들이 허구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해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허구와 현실을 저울질한 결과라 설명한다.

책은 어떤가? 허구와 현실의 중간? 아니면 두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는 것? 알 수 없다.

* 이 글에 예스24 블로거의 한 과학 교수께서 오컴의 면도날과 브레너의 빗자루를 책읽기에 비유한 것이 신선하다고 하며 그러나 두 개념이 대립되는 개념이라 생각해오지 않았는데 (내가 그런 글을 쓰니) 그런가 싶기도 하네요란 댓글을 달았다.

이에 나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며 두 개념이 처음에는 대립하지만 두 개념 모두 결국 불필요한 것들을 소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니 하나로 수렴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란 답을 했다.

이 분은 아킬레스와 거북의 대결(제논의 역설)과 중간화석에 관한 진화론자와 창조론자의 대립을 연결지어 설명한 내 글에 참신하다는 댓글을 다셨던 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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