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참담하게 죽은 것이 친부살해적 광기와 적대감을 보이기까지 하다가 부왕 군주 영조에 의해 당한 죽음이 아니라 나주벽서사건으로 전권을 장악한 노론이 사도세자가 대리청정 이후 정식으로 왕으로 즉위할 경우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사실을 조작하고 모함해 일으킨 정치권력 차원의 죽임임을 주장한 이주한 지음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을, 일본의 사상가 다케우치 요시미가 말한 불 속에 들어가 밤을 줍는 즉 화중취율(火中取栗)의 심정으로 읽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하이든의 현악4중주 ‘종달새‘라도 들려올 듯한 맑고 무연한 하늘을 감상하시니 부러운 마음이 커 유신시대에 단 하나의 혈육이던 이모에게서 대학 등록금을 훔쳐 상경한 ‘나‘ 강하원이 생활비 마련이 시급해 우연히 인쇄소에서 잡일을 하게 된 뒤 그 인쇄소를 근거로 지하운동을 하던 문화혁명회의 일을 돕던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을 주조로 하는 최윤 작가의 작품인 ‘회색 눈사람‘의 한 구절인 ˝어쩌면 이 계절의 하늘은 이토록 무연히 맑을까.˝란 문장을, 문화혁명회의 한 멤버인 안이란 성을 가진 사람이 일할 때 가끔 틀어놓던, 높낮이도 없고 비슷비슷하게 연결되어 하오의 잠 같기도 하다고 강하원이 회고한 에릭 사티의 음악과 함께 읊어보니 마치 시화(詩畫)전이 아닌 설악(說楽)전에라도 온 듯 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계기로 이렇듯 사는 것은 스스로 위안을 찾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런 긴 호흡의 문장을 쓴 것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에 나오는 284자에 이르는 긴 문장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숭산. 충청남도 예산에 솟은 산이다. 높지 않다. 해발 495m. 그래서다. 선원도 정상에 바투 자리하고 있다.˝ 같은 짧게 이어지는 문장들로 채워진 어느 필자의 책이 싫어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