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 마리아 보진스카, 조르주 상드... 프레드릭 쇼팽이 사랑했던 여자 사람들이다.
지지난 해였던가 예스 24 블로그의 프로필 사진을 내 실물 사진으로 설정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현재 내 페친이기도 한 한 블로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자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때 그 말이 생각나 나도 쇼팽이 사랑했던 사람을 여자 사람이라 표현해본다.
콘스탄치아와 마리아에게서 사랑을 거절당한 쇼팽은 조르주 상드와는 10년 가까이 사랑을 이어간다.
당당하고 남성적인 상드를 쇼팽은 보호자처럼 여겼다. 아니 상드가 쇼팽을 아들처럼 극진히 보살폈다고 해야 할까?
어떻든 쇼팽은 상드와도 헤어지고 만다. 쇼팽이 상드의 가족들에게 비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진 결혼을 한 솔랑주(상드의 딸)를 편들어서였다.
노앙에서 성악가 폴린 비아르도의 어린 딸을 돌보며 그 사랑스러움에 영감을 받아 베르쇠즈(자장가)를 작곡하기도 한 쇼팽은 상드와의 결별로 급격히 무너져갔다.
상드는 쇼팽에게 ˝우리만의 우정을 쌓아온 9년의 세월이 이렇게 이상하게 끝나다니 신에게 감사해야겠군요˝란 냉랭한, 최후통첩 같은 편지를 썼다.
상드와 헤어진 빌미가 된, 비상식적인 결혼을 편든 것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쇼팽의 결정을, 남자 같았던 어머니 상드의 무관심에 지친 상드의 딸 솔랑주를 어머니와 같은 따뜻함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이해하기에 탓하고 싶지 않다.
쇼팽이 겪은 상드와의 이별이 명곡 탄생의 동력이 되었기에 하는 말은 아니다. 쇼팽의 곡은 아름답지만 우선은 삶이지 음악이 아니다.
쇼팽의 곡들은 몇 차례의 실연을 포함한 불행했던 삶을 모태로 해서 탄생했지만 나는 그가 행복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단언할 수 없지만 지금 우리가 듣는 그의 곡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곡들이 많이 만들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