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사직동 J 시인의 집에서 열리는 시 낭송회에 참여하게 된 나에게 의미 있는 글이 한편 다가왔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소장(所藏) 시집수를 기준으로 시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80여 권의 시집을 가지고 있는 나도 최근 시를 가까이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시를 가까이 하지 못했지만 나는 최근 이혜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뜻밖의 바닐라’를 구입했고 시집 몇 권을 신청했다.
그리고 시에 대한 감각을 되찾으려는 생각에 지난 5년 전 쓴 시 감상 후기를 한편 찾아도 보았다.
바로 사직동 J 시인의 시를 읽고 쓴 후기인데 이 글에서 나는 “대체로 일상과 신변 및 마음의 변화를 잘 감지해 글로 옮기는 시인들을 보면 나보다 더 가깝게 여겨질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J 시인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는 말을 했다.
어떻든 내가 접한 글에서 가장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시인들이 처한 가난에 대한 부분이었다. 시인이 가난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시집 만권이 팔려야 인세가 700만원이라는 이야기이니 너무 형편이 나쁜 출판 사정에 관한 이야기라 해야 옳다.
언급한 필자에 의하면 시인들은 4 ~ 5년에 시집 한 권을 낼 수 있고 원고료가 일년에 100만원 정도이니 시만 써서는 최저생계비 근처에도 못 간다는 것이다.
내일 열리는 시 낭송 모임의 회비는 2만원인데 J 시인이 직접 저녁 식사와 간단한 차(茶) 정도를 준비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름이 덜 알려진 시인들을 돕기 위한 차원의 와인 판매도 이뤄진다고 한다.(앞서 시인의 가난이란 말을 했지만 이름이 덜 알려진 시인이라는 표현이 낫다 싶다.)
칸트가 대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민감함을 보이는 성격으로 규정해 인간의 능력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성을 가진 능력으로 인식되게 한 것이 예술적인 감성이지만 나는 내 시 읽기의 동기를 아름다움에 대한 순수한 감상 차원의 것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기독교 상담학자인 오경숙 님이 ‘쓰기 치유’란 책에서 말한 것처럼 시가 허락하는 치유적 힘에 대한 관심 차원의 것이라 하고 싶다.
술을 마시지 못하지만 와인도 구입하게 될 것 같다... 좋은 기회를 얻었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