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투지오 수도원 입구에 있는 표지판
- 침묵지대(Zone de Silence)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봉쇄수도원

여행객들은 왜 침묵을 엿보려 하는가
수도사들의 침묵과 고독을 넘보려 하는가
카르투지온들의 하얀 언어를 훔치고 싶어 하는가˝

조용미 시인의 ‘침묵지대‘의 도입부이다. 카르투지오 수도원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생피에르 드 샤르트뢰즈에 있다.

해발 1300미터에 있는 수도원까지 가는 길은 전나무 숲이 장관이라고...

월정사의 전나무 숲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카톨릭에는 봉쇄(封鎖) 수도원이 있다.

고독과 명상 속에서 신과 자신의 내면만을 향하도록 된 수도원이다. 신 역시 내면을 향해야 만날 수 있으니 결국 문제는 자신의 내면. 불교의 무문관(無門關)과 비교할 수 있을까?

에디트 슈타인이라는 철학자 출신의, 아우슈비츠 순교 성인인 카톨릭 수녀가 쓴 책을 읽은 기억을 되살려본다.

이해인 수녀께서 봉쇄수녀원 내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무리가 있다는 말을 했듯 그 봉쇄 시설에서도 나름의 기쁨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점을 알고 싶어하는 것일까? 시인이 말하듯. 에디트 슈타인 역시 그런 고독과 유폐 속의 기쁨을 말한 바 있다.

아니 어쩌면 기쁨은 그런 유폐의 처소에서 얻을 수 있는 선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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