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교보 아트스페이스에서 본 제주 출신 강요배 화가의 ‘노각성 조부졸’이란 작품. 노각성 자부줄이란 이름을 오늘 듣고 다시 그 의미 탐색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확인했다. 하늘을 오르내리는 데 쓰인, 제주 신화의 줄인 노각성 자부줄은 삼승(산신: 産神) 할망과 관계된 실이라고..
물론 노각성이란 말, 자부줄이란 말의 어원은 오리무중이다. 다만 하늘을 오르내리는 데 쓰인 줄이라는 사실.
이런 실마리가 되는 것으로 아리아드네의 실이 있다. 니체로 인해 유명해진 디오니소스의 아내 아리아드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르스라는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을 죽이기 위해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애인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
테세우스는 실타래를 풀면서 미궁으로 들어가 괴물을 죽인 뒤 풀린 실을 따라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한다. 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를 안다. 중저가 클래식 CD로 유명한 낙소스 레이블도 생각난다.
노각성 자부줄이 수직을 향한 것이라면 아리아드네의 실은 수평을 향한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바벨탑 vs 종묘(宗廟)를 생각하게 된다.
바벨탑이 수직을 향한 탑이라면 종묘는 불천위(不遷位) 다섯 임금만을 모시려던 계획에서 후퇴(?)해 시조(始祖)에 준(準)하는 훌륭한 임금들을 추가로 모시기 위해 길이를 늘린 건축물이다.
한 철학자는 쌓아서 구원을 얻으려는 심리를 바벨탑 무의식이라 정의했다. 견고한 도시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음으로써 이름을 떨치려 한 바빌로니아 사람들을 창세기의 신이 언어를 혼란시킴으로써 더 이상 의사소통하지 못하게 해 쌓지 못하게 한 탑.
종묘는 조선의 멸망으로 더는 수평 증축(增築)되지 않게 되었다. 한 건축 칼럼니스트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 지구에서 무언가가 우뚝 서 있다는 것은 그 중력을 거스르는 일이어서 항상 눈에 띈다.”는 말을 한다.
권력 과시적 성격이 강한 건축물의 실상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여주는 글이다.(서윤영 지음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187 페이지) 다른 건물보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 역시 권력 과시의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