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가 주는 쓸쓸함과 처량함을 마음에 둔 적이 있었다. 내가 태어난 경기도 양주(楊州)에도 폐사지가 있다. 고려 시대의 절터인 회암사지(檜巖寺址)이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내 어릴 적 어머니께서 다니시던 곳이다.(지금의 회암사는 남양주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 지어진 사찰이다.)

 

지난 번 친구 어머니 장례때 알게 된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 해설사께, 해설을 들으려면 최소 인원 규정이 있는지 물었다. 회암사지는 관람객이 많지 않아 한 사람이 신청해도 가능하다는 답이 왔다.

 

‘안녕하신지요?‘라는 내 물음에 그 분은 ˝안녕하십니다.˝라는 답을 보내왔다. 무언가 함축적인 아니면 시를 생각하게 하는 답이다.

 

<안녕하시냐는 제 물음에 ˝안녕하십니다˝라고 하시니 조용미 시인의 ‘봄, 양화소록‘ 중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내 사는 곳 근처 개울가에 복사꽃 활짝 피어 봄빛 어지러운데 당신은 잘 지내나요... 복사꽃이 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 봄날이 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

아련한 시이지요...>

 

그 분은 아침부터 양화소록에 끌려 고사관수도까지 보았다며 좋은 지적 자극, 좋은 동기 부여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이제 경복궁 해설(12월 23일)에서는 그 분이, 경복궁 이후 곧 찾을 회암사지에서는 내가 듣는 입장이 된다. 내가 먼저 듣는 시간을 갖고 싶지만 부담에 먼저 해설하는 쪽을 택했다. 겨울의 냇물을 건너듯(여與), 이웃을 두려워 하듯(유猶) 한다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처신처럼 조심스러운 행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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