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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
문현주 지음 / 서유재 / 2016년 11월
평점 :
남자 열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보다 여자(부인)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가 어렵다는 ‘동의보감‘의 말이 있다. 이는 성 차이를 고려한 의학(gender - specific medicine)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한의학을 통해 이어져 오고 있다. 4년 전 한 인문학자의 ’동의보감’의 해설서에 해당하는, 여성적 시각에 근거한 책을 읽었다. 그 이후 다시 기계적 평등보다 상황을 고려한 공정을 기치로 내세운 한의학 박사 문현주 님의 책을 읽게 되었다.
제목은 ‘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性)이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적 성(gender)이라는 점이다. 의료 인류학 학사이기도 한 저자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 몸의 세포에도 성(性)이 있을 만큼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여자가 아니기에 세부 사항이나 치료 지침보다 전체적 틀, 문화적, 인류학적 시각을 위주로 책을 읽게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굳이 여자가 아니어도 공감할 만한 내용이 책에는 많다. 가령 아픔은 사람이 느끼는 것, 질병은 장기(臟器)가 갖는 것이라는 또는 아픔은 환자가 병원에 갈 때 느끼는 것, 질병은 진료실에서 받아 나오는 것이라는 진술 등이 그렇다.
반면 통증을 통하지 않아 생기는 것 즉 불통즉통(不通卽痛)만이 아닌 영양 부족으로 인한 것 즉 불영즉통(不營卽痛)으로도 보는 것은 새로운 무기를 장착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여자는 오장육부가 아니라 육장육부를 가지고 있다 해도 될 정도라는 말이다. 자궁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한의학은 뿌리를 다루는 의학이다. 저자에 의하면 한의학은 얼굴을 오장 육부의 거울로 본다. ‘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는 여성적 시각과 여성에 대한 배려, 한의학적 지혜가 두루 만난 인상적인 책이다.
더욱 저자가 의료인류학을 전공한 분이니 그런 시각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고 배어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저자를 통해 알게 된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기(氣)이다. 기란 피를 밀어주는 힘이다.(57 페이지) 흔히 여자는 혈허(血虛), 남자는 기허(氣虛)를 주로 앓는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여자의 몸이란 자연(自然)과 순리에 근거한 ‘성 차이를 고려한 의학’으로 여자쪽에 무게를 둔 한의학적 의미의 몸이다. 저자는 귀가 따갑도록 더 많이 여성 건강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11 페이지)
사회적 의미의 성(gender)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임신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의 말을 한다. 임신에 우호적인 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적 환경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여성의 몸은 사회적 지원이 결핍된 환경을 생식에 비우호적인 환경이라 인식하고 생식을 억제한다고 한다.(117 페이지) 관심 있게 본 부분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강한 임신을 위한 마법의 주문이란 글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불일치를 이야기하며 저자는 무의식이 느슨해지고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를 트랜스(trance: 깊은 명상) 상태라 명명한다.(129 페이지)
건강한 임신을 위한 몸과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는 주문(呪文)을 주문(注文)하는 저자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여성의 노고와 신비, 그리고 생명의 존귀함이다. 너무 많아 흔하게 보이지만 개별 생명체들은 너무 고귀한 존재들이다. 탄생의 어려움 또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단어가 활태(滑胎)이다. 이는 과일이 채 익기도 전에 자꾸 떨어지듯 태아가 엄마의 배 속에서 충분히 자라기도 전에 자꾸 미끄러진다는 의미로 반복 유산을 지칭한다.(135 페이지)
저자는 대부분의 유산이 임신 초기에 이루어지기에 마음은 아파도 몸은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짧은 기간 동안 임신과 유산을 오가며 급격하게 변한 호르몬과 임신을 준비했던 자궁과 난소를 회복하는 데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은 미병(未病)이란 개념이다. 뚜렷하게 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여러 증상들을 호소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진화생물학자 마지 프로펫(Margie Profet)은 입덧이 임신 초기 독소나 위험 물질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전이라 주장했다.
실제로 입덧이 심한 산모는 입덧이 없는 산모에 비해 유산 위험이 뚜렷하게 낮다고 한다.(156 페이지) 미국 연구팀이 임신부들의 출산일을 여러 차원으로 살펴본 결과 예정일에 맞춰 아이를 낳는 경우는 4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임신 기간 40주 신화는 깨졌다고 보도했다. 섣부른 유도분만은 제왕절개 위험을 높인다.(169 페이지) 출산은 가장 개인적인 사건이면서 새로운 사회 구성원의 탄생을 의미한다.(179 페이지)
2016년 인류학자 폴 후퍼 등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 사회일수록 출산율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194 페이지) 저자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더 많은 질병에 걸리고 평균수명도 훨씬 짧다는 의료사회학자 리처드 윌킨슨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이는 평등해야 임신한다는 말로 바꾸어도 맞는 말이라 설명한다.(195 페이지) 그리고 저출산은 빨리 결혼하라고, 아이 많이 낳으라고 윽박지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 말한다.(197 페이지)
임신, 출산, 완경 등을 지나면 중년을 논하는 시기가 온다. 바버라 스트로치의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는 이런 말을 전한다. “중년의 뇌는 우리가 삶을 헤쳐 나가도록 도우며, 혼란을 가르며, 해답을 찾아내고, 누구를 무시하고, 무엇을 무시할지, 언제 왼쪽으로 가고 언제 오른쪽으로 갈지를 안다.”(222 페이지) 기억력은 약간 떨어질지라도 탁월한 통찰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중년의 위상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치매와 건망증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출산으로 인해 기혈이 허약해져 뇌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못하기에 건망증이 생긴다.(219 페이지)
여성은 매달 겪는 월경으로 인한 여성 호르몬과의 관련 때문에 우울증에 취약하다. ’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는 생리(生理)에서 죽음까지 여성 건강의 A에서 Z까지를 망라한 책이다. “사랑하는 두 딸 예린과 채린 그리고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책을 바친다는 저자의 결어(結語)가 인상적이다. 나도 저자처럼 여성으로 당당하고 건강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들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물론 당연히 사회적 차원의 지원, 그리고 여성에게 우호적인 사회 환경이 필요하다. 건강하고 따뜻한 귀한 책으로 ’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