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학을 그 자체가 아닌 정치 논리로 보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 내 지론(持論)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작인 이종호 박사의 ‘한국의 과학 천재들’에 소개된 이휘소(李輝昭) 박사에 대한 시선이 대표적 경우가 아닐까 싶다. 42세에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 그를 많은 사람들이 원자폭탄 개발을 둘러싸고 빚어진 미국과의 갈등 차원으로 보는 듯 하다. 나는 물론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으로도 그려졌던 이휘소 박사가 원자폭탄 개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데에 동의하며, 그가 숭고한 뜻을 가졌다는 말에 공감한다.
이휘소 박사는 “핵무기는 언젠가 반드시 없어져야 하며 특히 독재가 행해지고 있는 개발도상국에서의 핵무기 개발은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했다. 정치적 이슈만을 다룰 수 없기에 어렵고 생소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은 그가 전약(電弱: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 통합)이론의 발전판인 게이지 이론의 실험치와 이론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해결했다는 말이다.(재규격화)
여기서 그치고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문학인들이 쓴 이휘소 박사의 전기 또는 소설에 비해 과학자들이 쓴 본격 해설서는 드물다는 사실이다. 강주상 박사의 ‘이휘소 평전’은 드물게 만날 수 있는 본격 이휘소 평전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스토니브룩 물리학과에서 이휘소 박사에게 박사 논문을 지도받은 것을 계기로 사제의 연을 맺은 분이다. 이 분은 공석하 시인/ 교수의 '핵물리학자 이휘소'란 책에 대해 강력 항의한 분이기도 하다.
'핵물리학자 이휘소'는 박정희가 수차례 이휘소 박사에게 친서를 보내 핵무기 개발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이휘소 박사가 이를 받아들여 77년 5월 일본에 들렀을 때 자신의 다리뼈 속에 마이크로 필름을 숨겨와 한국정부측에 전달했다는 주장이 담긴 책이다. 이 책에서 이휘소 박사의 죽음은 사고사가 아니라 미국측이 사고를 위장해 주도면밀하게 살해한 것으로 소개되었다.(1991년 6월호 과학 동아 ‘비운의 물리학자 이휘소의 삶과 죽음’ 참고) 문학적 상상력도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에 입각한 상상력을 지닐 수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