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난다. 최근의 내 관심거리 안에서만 보더라도 경복궁이란 말, 근정전이란 말, 사정전이란 말, 실록(實錄)이란 명칭 등 중국의 주요 고전에서 유래한 개념어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궁궐을 기준으로 종묘는 좌측에, 사직단은 우측에 배치함을 이르는 좌묘우사(左廟右社), 조정(朝廷)은 궁궐의 전면에, 시장(市場)은 후면에 배치함을 이르는 전조후시(前朝後市) 등 주요 도시계획의 원칙들도 중국의 고전에서 유래했다. 사실 원칙이 유래한 것에 비하면 이름이 유래한 것은 별 것 아닐 수 있다. 다시 경복궁 이야기를 하자면 경복(景福)의 景은 볕 경자이면서 그림자 영이기도 하다. 빛과 그림자가 아닌 볕과 그림자여서 정확히 반대된다고 할 수 없지만 하나의 글자에 대조적인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영으로 쓰이는 景은 영정(影幀)에 쓰이는 그림자 영(影)과 뜻이 같은 글자이다.
경위(涇渭)란 말이 있다. 역시 중국에서 비롯된 말이다. 중국의 경수(涇水)는 흐리고 위수(渭水)는 맑아 뚜렷이 구분된다는 데서 나온 말로 사물의 이치에 대한 옳고 그른 구분이나 분별을 의미한다.(사전은 경수는 항상 흐리고 위수는 항상 맑다고 말한다.) 문제는 ‘항상’이라는 전제이다. 세상에 항상 흐리거나 맑은 물이 없다는 점에서 경위는 문제적인 말이다. 물론 항상이란 말을 빼도 문제이다. 흐린 물과 맑은 물이 구별되어 있다면 세상 살기는 참 쉽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흐린 물과 맑은 물로 선명히 나뉘지 않는다. 그런 경우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한 필자는 “서양의 책과 과거를 배우는 데만 열을 올리는 우리는 모두 서양귀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2016년 11월 7일 세계일보) 나는 우리가 서양 사상들을 그렇게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 말은 지나치다 생각한다. 그 필자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대통령이 영락없는 선무당이 되어버렸다고 전제한 뒤 한국의 국민의식은 아직 하위단위인 지역과 문중과 당파와 기업에 머물러 있고, 야당과 운동권의 민주주의 혹은 민중주의 운동도 굿판의 성격이 강하기에 우리 국민 모두 자신의 귀신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함으로써, 그리고 지적 사대주의를 샤머니즘이라 말함으로써 본의가 어디에 있든 흐린 물과 맑은 물을 한데 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의도는 우리 모두 흐린 물이라 말하려는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청(丹靑) 공부를 하다 발견한 자료들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단청은 중국에서 발달한 오행설과 중국 문양의 영향을 받아왔지만 표현 방법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내용이다.(김의식 지음 ‘그림으로 만나는 부처의 세계 탱화’ 22 페이지) 도안화된 머리초 문양 및 극채색의 대비를 강조한 휘(暉) 문양이 차이점들이다. 머리초는 서까래 등의 부재(部材)의 끝에 장식하는 단청무늬를 말한다. 휘는 머리초 주문양의 둘레를 감싼 색실에 접하여 장식하는 다양한 색대(色帶)를 말한다.(暉: 빛 휘) 그렇다면 오늘 서양에서 받아들인 사상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예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부지런히 탐구해 그런 예들을 알아내거나 직접 그런 예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