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여래명호품에 희망을 뽑아버리려고란 말이 나와 고심 끝에 무엇을 바라지 않고 그냥 할 뿐이라 해석을 한 스님의 글을 읽었다. 이 글을 읽고 김정아 작가의 나의 부처님 공부란 책을 펴보았다. 작가는 온종일 백지 공책에 금강경을 베껴 쓸 수 밖에 없던 때, 온종일 백팔배, 천팔십배를 할 수 밖에 없던 때, 온종일 벽을 바라볼 수 밖에 없던 때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신기하게도 원망이나 기원, 황홀경 같이 밖으로 향하는 기운을 안으로 돌이켜 단숨에 집어삼킬 것처럼 덤벼들던 고통의 발톱을 껴안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고 말한다.
작가 한강의 희망 없이 세상 긍정하기, 평론가 테리 이글턴의 낙관하지 않는 희망(hope without optimism) 등의 말을 생각할 수 있겠다. 두 명제는 무엇이 없이 다른 무엇을 하는 것이기에 희망을 뽑아버리는것과 맥락이 같지만 전자는 희망이 없고 후자는 낙관이 없다는 차이가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조화롭게 보아야 할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관건은 불경 번역(산스크리트어에서 중국어로의)에는 오류가 없다는 스님의 말씀이다. 불경 번역에 오류가 없다는 말씀은 불경 번역에도 오류가 있다는 내 말에 답하신 스님의 말씀이다. 나는 인터넷과 책을 통한 뒤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자료를 찾아 읽고 내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