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자유가 필요해 - 낭랑 오십 해직 기자 미친 척 남미로 떠나다
우장균 지음 / 북플래닛(BookPlanet)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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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의 시 가운데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찾아 헤매던 프랑스의 처녀가 몸과 마음이 모두 자유롭기 위해 등짐을 지고 떠나 사상에서도, 사회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공부에서도, 친구에게서도 벗어나려고 끝까지 혼자 헤매다가 완전한 자유를 가슴에 넘치게 안은 채 완전무결한 자유의 추위와 배고픔으로 겨울의 어느 들판에서 얼어 죽었다는 ‘자유주의자’란 시가 있다.


‘남자도 자유가 필요해’를 보며 마종기 시인의 시를 생각하는 것은 자유에는 댓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흔이 넘어 해직 기자가 된 뒤 후배와 함께 30일간의 남미 배낭여행을 다녀온 저자가 풀어놓은 자유에 대한 묵직한 단상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우리나라의 대척점에 가까운 곳을 여행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행복이자 자유(무엇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이지만 더 어렵고 중요한 것은 정념이나 충동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아내는 전화로 해직 소식을 전하자 “아....그랬구나“란 말을 했다고 한다. 마루야마 겐지의 첫 작품인 ‘여름의 흐름’에 나오는 주인공의 아내와는 너무 다른 반응이다. 이 작품은 사형집행 일을 하는 남자가 아내에게 이제 그 끔찍한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아내가 ”당신은 잘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했다는 소설이다. 소름 끼치는 반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행도 나름이다. 나는 저자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한 여행도 용감한 결정이었지만 직장을 그만 두고 얼마 되지 않는 전재산을 털어 세계 일주를 한 젊은이의 여행에 비해서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것이었으리라. 물론 저자의 말대로 남미 배낭 여행은 해직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여행이었을 것이다. 어떻든 ‘자유‘를 말하다 해직된 뒤 갖게 된 자유로운 여행이라니 아이러니하다.


목차를 통해 알 수 있듯 저자가 거친 코스는 1. 에콰도르 키토, 2. 볼리비아 우유니, 3. 페루 나스카, 4. 칠레 산티아고, 5. 칠레 발파라이소, 6. 페루 마추픽추, 7. 페루 카하마르카. 8. 볼리비아 티티카카. 9. 볼리비아 라 이구에라 등이다. 적도(赤道)를 뜻하는 에콰도르에서 저자 일행은 (측량 잘못으로 진짜 적도로 잘못 알려진 곳이 아닌 말 그대로의) 진짜 적도를 찾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는 암스트롱이 달에서 본 아름답게 빛나던 하얀 점이 바로 우유니 소금 사막이라는 말을 한다.


여행기는 목차를 편성하기에 용이하다, 그리고 여행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노하우가 담기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자신의 옛날을 회상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밖에 없다. 가령 저자는 여행지에서 만난 60대 아버지와 20대 아들의 기이한 여행을 보며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저자가 당연히 남미 역사에 대해 상식 이상의 정보들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갔거나 다녀와서 글을 쓰는 과정에서 공부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남미는 우리와 거리가 멀지만 공감할 면도 가지고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으로부터의 식민 경험이 우리의 일제 식민지 경험과 겹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볼리비아에서라면 내륙국임에도 해군이 있는 볼리비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칠레와의 전쟁에서 영토를 잃고 내륙국이 된 볼리비아는 티티카카 호수(제주도 면적의 4.5배)에서 해군 훈련을 한다. 바다를 면한 땅을 회복할 때를 대비한 훈련이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결국 사람 이야기이다. 저자의 책을 보며 그런 점을 새삼 느낀다. 저자는 우유니 사막에서 척박한 사막에 적응하느라 털이 짧아졌지만 세계 최고의 품질이 된 비쿠냐(사슴류의 동물)를 보고 엘리엇의 ’황무지‘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저자는 문정희 시인이 말랑하고 구수하고 정겹지만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 화려한 뷔페상의 콩떡 같다고 말한 나이인 오십에 남미 여행을 감행한 것이다.


저자는 두고 두고 남는 것은 글이란 말로 글쓰기의 치유 효과까지 언급한다. 칠레에서는 네루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파랄에서 태어나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를 사랑했던 네루다. 저자는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유럽 세력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이기고 그들의 땅을 강탈하는 결정적 계기“로 삼은 카하마르카 전투를 이야기한다. 안데스 고원지대에 있는 페루의 카하마르카(Cajamarca)는 1532년 잉카의 8만 대군이 스페인 용병에게 패한 역사의 현장이다.


”들판에서 어린 양떼“가 죽듯 잉카인들이 도륙된 이 전투 이후 카하마르카는 스페인 도시가 되었다. 스페인에 의해 잉카의 흔적이 지워져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광장 주변 최고 명당 자리에 잉카의 궁전 대신 천주교 성당이 세워진 것은 아타우알파(Atahuallpa: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에게 성경을 들이대며 기독교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고 스페인 군대의 정복활동을 지원했던 교회에 대한 예우일 것이라고.(225 페이지)


역사와 무관한 곳이 없겠지만 남미야말로 역사적 무게를 짊어진 곳이 아닌지? 그러나 무게라고 하기에 카하마르카 전투는 너무 어이 없다. 8만 대군이 용병 168명에게 당한 전투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것도 무게라면 무게이다. 잉카 문명은 문자, 철기, 바퀴, 화약이 없는 문명이었다. 라 이구에라는 스페인어로 무화과나무라는 뜻이다. 49년 전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볼리바아 군이 나무에서 무화과 열매를 따듯 체 게바라를 손아귀에 넣은 곳이다. 잉카의 카하마르카 전투 만큼 가슴 아픈 사건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1928 - 1967)는 볼리비아를 남미 해방의 교두보로 삼았지만 실패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의학박사였던 게바라는 쿠바 재무장관, 쿠바 국립은행 총재, 쿠바 라카바이나 요새 사령관 등을 지냈다. 게바라에게 조국은 아르헨티나만이 아니었다. 게바라는 돈이 없다고 차별받지 않는 나라, 유색인이라고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조국으로 꿈꾸었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나오듯 게바라는 넉 달 동안 남미를 여행하며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에게 수탈당하는 인디오와 메스티소의 삶을 목격했다.(281, 282 페이지)


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늘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는 말을 남겼다. 게바라는 미국의 지령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재판도 받지 않고 처형되었다. 미국은 국제 여론을 우려해 볼리비아 정부에 게바라가 교전 중 사망했다고 발표하라고 종용했다. 저자는 ’지식인의 종말‘의 저자 레지 드브레(1940 - )가 게릴라로 활약하다 체포되어 CIA의 고문에 못 이겨 체 게바라 체포에 결정적인 제보를 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추문이 있음을 전한다.


레지 브드레는 나도 읽은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드브레는 스물 다섯에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철학 교수가 된 뒤 체 게바라를 만나러 볼리비아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저자는 자유와 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기본 조건이라 말한다. 가장의 책무를 짊어진 아버지, 아빠에게도 자유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유의 소중함을 알 때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은 고딕의 록 음악 ’슬픈 역사 이야기’도 아니고 호이징하의 ‘호모 루덴스’이다. 미처 읽지 못한 이 책을 ‘남자도 자유가 필요해’를 계기로 읽으려 한다. 자유라기보다 유희의 의미를 강조한 책이지만 말이다. 여행이 아닌 다른 경로로 얻는 자유 아닌 유희를 만나 활용하는 법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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