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압구정동의 한 한의원에서 열린 ‘떨지 않고 말 잘하는 법‘ 강의. 10여명이 들어설 수 있는 작은 방에서 분위기 좋게 시간이 갔다. 두 사람씩 파트너가 되어 3분씩 무작위로 주어진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당황(?)스러웠던 점은 당시 내가 떨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또는 누구 앞에서) 말을 하느냐,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등에 따라 떨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당연하다.

 

지난 번 아프가니스탄 황금유물전 전시회가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관련 강연회가 끝나고 질문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심하게 목소리가 떨리는 경험을 했다. 그때와 그제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400여명이 들은 큰 자리였고 질문 주제도 민감한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떨렸다. 반면 그제는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인 평화로운 자리였고 과제도 단순했다. 내 파트너는 30세 정도의 여자분으로 신뢰에 대해 말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 분이 먼저 말을 하도록 순서가 정해지자 한편으로는 그 분의 말을 들으며 공감도 표하고 한편으로는 무슨 말을 할까를 궁리했다. 내게 주어진 주제는 열정(熱情)이었다. 내 파트너는 마지막 30여초 정도를 남겨두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끝까지 이야기를 했다. 듣건대 왠만한 사람들은 1분 30초 정도를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나는 열정을 영어로 passion이라 하는데 수난(受難)도 Passion이라 한다는 말로 운을 떼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 등을 예로 들며 나는 열정적인 사람은 상처를 받기 쉬운데 그것이 바로 수난이 아닌가 한다는 말을 했다. 반면 냉정한 사람은 상처받는 것과 거리가 멀지만 사람과의 거리감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말, 인간에게는 갭이 있고 다름이 있으니 극단은 피해야 한다는 말 등을 더했다. 강연자는 즉흥성(순발력), 일관성, 구성(기, 승, 전, 결 또는 서론, 본론, 결론의 체계를 갖추는 것), 논리성(명확한 근거 제시), 유머 등으로 연습해야 할(또는 중점을 두어야 할) 우선 순위를 두었다.

 

SK에서 오래 스피치 리더십 강사를 지낸 강연자는 삶에 활력을 주고 위험에 대처하게 하는 등 인간과 필수불가결한 긴장, 떨림 등을 모두 없앨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말을 하며 그런 점에서 책 제목(’떨지 않고 말 잘 하는 법‘)이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을 더했다. 이 말을 듣고 내가 생각한 것은 (얼마나 맥락이 일치하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정신분석가 백상현 교수가 ’라깡의 루브르‘에서 한 말이었다.

 

그에 의하면 정신분석은 증상의 소멸이 아닌 주체가 증상과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증상(을 유지하려는 것)은 주체가 큰 쾌락을 즐기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김승희 시인의 ’객석에 앉은 여자‘를 읽어야겠다. 아프기 때문에 삶을 열렬히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열렬히 살지 못하는 삶의 알리바이를 마련하기 위해 아마도 병을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받는 여자에 대한 시. 물론 이 경우는 상황이 복잡하다. 그녀는 병을 길러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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