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 서울성곽길 따라 6백 년 역사 속으로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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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올해는 1394년 이성계가 조선의 수도로 한양을 정한 지 622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은 중국 중심권 안에 머물렀던 유교 국가였다. 조선, 하면 생각나는 것은 당쟁, 남녀차별적인 유교 문화, 장구한 왕조의 역사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성곽길도 나름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양 도성 걸어서 한 바퀴’는 오십을 목전에 둔 어느 날 한양 도성길 순례에 나선 역사 체험가 유영호의 탐험 및 탐사(探史)의 노고가 깃든 책이다.


한양 정도(定都), 그리고 주산(主山) 설정 자체가 유교 또는 풍수지리, 불교 등의 이념 대립이 낳은 결과이다. 한양도성은 현존 도성들 중 세계 최장 기간(514년: 1396 - 1910년)에 걸쳐 도성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중국 문헌인 ‘석명(釋名)’에 궁(宮)은 궁(穹)이란 글이 있다. 담 위로 높이 솟은 집이라는 의미이다. 저자의 책을 통해 우리는 한양 도성길은 일제(日帝)가 남긴 흔적과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왜(倭)에서 일본까지 엮인 우리의 역사는 친일과 민주인사의 대결 구도를 선명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역사적 유물 및 건축물 등과 관계된 인물들을 호명해 그 배경과 변천사(變遷史)를 밝히고 우리의 현재 의미와 연결짓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그렇기에 야사(野史)를 많이 참고한 것이 눈에 띈다.


좁게는 도읍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넓게는 성곽 및 그 안의 공간을 가리키는 한양도성(都城)은 18여 km의 둘레길이다. 한양도성 순례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사람이라면 꼭 해야 할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처음 서울 성곽을 따라 걸으며 인구 1천만의 대도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과 숲이 있었나 싶을 만큼 놀라웠다는 말을 한다.


한양 도성, 하면 나는 먼저 부암동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자신이 사는 부암동 집을 "광화문이 지척이면서도 조용하고 호젓하며 공기가 맑다.“고 표현한 한 언론인으로 인해서이다. 수도로서의 위상과 지위를 지켜오던 한양 도성은 한말 외세에 의한 강제적 근대화와 일제강점으로 인해 훼손되기 시작했다.


1988년 전차 개통으로 인해, 그리고 1907년 숭례문 아래로는 비좁아 지나갈 수 없다는 이유를 제시한 일본 왕세자 요시히토 사건 등으로 인한 수난을 당하게 된 한양 도성은 1925년 이후 성벽에 인접해 집을 지은 민간에 의해서도 훼손이 가속화했다고 할 수 있다. 책은 한양 도성과 이웃한 역사적 건물들에 대한 정보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낸 사건 이야기가 함께 비중 있게 전달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란 친일 쪽에 섰던 자들과 반일 애국지사들로 양분된다고 할 수 있다. 때로 알려진 것과 다른 부분도 담고 있어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나는 저자의 치밀한 역사 고증을 신뢰한다. 확실한 근거 제시와 분명한 논리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명한 역사관은 조선 초기 있었던 불교와 유교 정확하게는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대립 이상으로 흥미를 끈다.


왕위를 놓고 벌인 골육상쟁 및 부자의 갈등, 권력의 격랑에 휘말린 임금과 왕비(王妃)의 애틋한 사연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 사연들 중 단연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사연이다. 정순왕후 송씨는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세자가 아닌 국왕과 혼인한 왕비이다. 고려 의종때 희종법사가 창건한 숭인동 청룡사에 우화루(雨花樓)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마지막 밤을 지새운 곳으로 영원히 이별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영리정(永離停)으로도 불렸다.


인상적인 것은 오행(五行) 즉 상생상극 관계로 엮인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에 맞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란 미덕을 건물에 적용해 도성 동서남북의 문 이름을 각각 흥인(仁)지문, 돈의(義)문, 숭례(禮)문, 숙정(正)문 등으로 설정하고 중앙에 보신(信)각을 둔 것이다. 북문에 지(智)가 아닌 정(正)이란 이름이 붙은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숙종때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도록 축성한 홍지(智)문이 숙정문을 대신했다는 말이 있고, 숙정문이 소지(智)문이었다는 말이 있다.


‘한양 도성 걸어서 한바퀴’는 숱한 사연과 배경 지식을 실어 역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이 빛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은 역사적 유적과 건물도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로 수렴한다는 점이다. 도성에 대한 지식은 사람들이 만나 이루어낸 사건에 대한 지식 곧 역사에 대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어떤 관념적 주제를 논리적이거나 실증적으로 입증한 역사 보고서가 아니라 설명한다.


그저 물리적 시간대와 공간대를 따라 도성 길을 순례하며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기록한 순수 기행문이라는 소개가 눈길을 끈다. 그렇기에 시대적 배경면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역사를 수필(隨筆)처럼 자유로운 필치로 그려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달빛 따라 걷는 한양 도성길 걷기라는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저자의 책은 그 낭만적이고 역사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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