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을 인용하기 위해 시인에게는 6만원, 해당 출판사에는 3만원 등 모두 9만원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현 저작권 보호 정책에 따르면 50편의 시를 인용해 시 해설서를 낼 경우 지불해야 하는 돈은 450만원이다. 3000부 이상은 판매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요즘처럼 시(그리고 시 해설가나 시 비평가의 글들)가 잘 읽히지 않는 세상에서 이루기 어려운 고지라 할 만하다. 장석남 시인의 ‘시의 정거장’은 이런 이유 때문에 시 인용은 일체 하지 않고 해설만 실은 책이다. 독자로서는 해당 시들을 찾아 읽으려 할 수도 있고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시인은 시집 한 권을 내는 것을 집 한 채를 짓는 것에 비유했다. 타당한 말이다. 물론 궁금증이 없을 수 없다. 

 

비평가나 문인이 소개한 시가 유명해져 판매 수익 증가로 이어질 경우 시인이 해설서나 비평서의 저자들에게 사례 성격의 돈이든 거래 성격의 돈이든 지불하는가, 란 궁금증이다.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들은 시도 잘 안 읽히지만 시 비평이나 시 해설서는 더 안 읽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장석남 시인의 경우 자신의 수익을 위해 시를 인용하는 시 해설서를 쓰려 했을 것이고 결국 저작권 보호 때문에 시 없는 시 해설서를 쓴 것이지만 재수록 비용 지불과 무관한 연구나 교육, 비평 등을 목적으로 한 책으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앞서 말한 두 경우(해당 시들을 찾아 읽으려는 경우와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 중 전자에 해당한다. 즉 해당 시들을 찾아 읽으려는 부류에 속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시 없는 시 해설서’들이 시의 정거장’처럼 일정 수준 이상을 담보했다 해도 계속 될 경우 피로감을 줄 수 있으리라 보인다. 저작권 보호 때문에 해설과 시 원문을 함께 실은 좋은 시 해설서의 출판이 위축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시인, 독자, 해설가가 상생하는 길은 없을까? 장석남 시인은 언젠가 대학로인가를 지나다가 ‘물의 정거장’이란 글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자신이 쓰는 글들이 문득 그런 것은 아닐까, 란 장석남 시인의 생각을 따르면 ‘시의 정거장’은 시인과 독자를 매개하는 의미가 깃든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매개(媒介)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시 없는 시 해설서 같은 파격적인 매개가 아닌 평범한 매개여야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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