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을 관람하고 왔다.(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국립기관으로는 처음 여는 것이라고 하니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그런 반면 이제야, 라며 푸대접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정확하게 말해 나의 경우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관람을 마쳤다고 해야 옳다. 물론 주최측의 기획의도에 따라 도슨트의 해설이 맞추어졌을 것이고 그 도슨트의 해설에 맞추어 관람자들의 사유의 길이 유도되는 것은 유별난 일은 아니다. 한정된 시간 때문에, 그리고 관람자들의 부족한 지식으로 인해 도슨트의 해설 이후 각자 돌아가 이중섭 화가의 그림과 삶에 대해 퍼즐을 짜맞추는 것에 맞먹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는 이중섭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가난, 가족과의 이별, 사기(詐欺)를 당한 뒤 맞은 파탄, 식욕부진과 우울증, 분열증, 간염, 정신병원행 등으로 얼룩진 그의 삶에 유일하게 희망적이고 밝았던 시기는 통영 시절이었다. 이 시절 그가 그린 소는 참 역동적이었다. 반면 통영 이후 대구에서 그린 소는 피를 흘리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그가 맞은 시기에 따라 소도 얼마나 달랐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은지(銀紙)에 그린 이중섭의 그림(은지화)이 남다른(?)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이다.(은박지에 철필 같은 것을 꾹꾹 눌러 그림을 그리고 채색까지 한 그림) 그것은 화가 생존 시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형편이 좋아지면 은지화 기법으로 벽화를 그려보고 싶다던 이중섭의 바람을 이중섭 백년의 신화라는 타이틀에 따라 그의 작품을 알리는 기획자들이 컴퓨터 작업으로 대형 벽화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배려해 만족시킨 것이다.


신화화되었다는 이유로 이중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가 대구 시절 지신의 그림을 정상적인 화풍으로 여기지 않는 정신적 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다. 신화화의 장막을 걷어내고 보아도 이중섭은 충분히 뛰어난 역량을 앞서서 보여준 화가라 해야 한다. 이중섭은 민족을 상징하는 소를 거침 없이 그렸는데 그것은 민족적 요소와 독창성의 결합이라 할 만하다.


여러 작품들 가운데 특별히 내 눈길을 끈 작품은 ‘돌아오지 않는 강‘이란 작품이다. 오른쪽에 창틀에 몸을 기대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남자가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등을 돌린 채 무언가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더 근사(近似)하게 말하면 오른쪽의 남자와 왼쪽의 여자 사이에 벽이라도 놓여져 있는 듯 하다. 여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이중섭의 삶을 고려하면 그림의 여인은 어머니일 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다.


이 그림을 보고 기형도(1960 - 1989) 시인의 ’엄마 걱정‘이란 시를 떠올렸다.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유년의 윗목”


통하는 부분이 많은 그림과 시이다. 이중섭의 삶과 그림을 연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삶과 그림을 나누어 보고 싶다던 내 생각은 잘못이라 해야 한다.) 문학적 관점에서의 이중섭 강의(권영민 교수), 심리학 관점에서의 이중섭 강의(우종민)를 들을 기회를 놓쳤고 이제 남은 것은 미술사 관점에서의 이중섭 강의(김현숙)이다. 일찍 알았다면, 그리고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강의를 듣기 위해 세 번이나 그림을 보러 가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기에 만일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어떤 것을 골랐을까?


심리학 강의를 골랐겠지만 관건은 그를 이해하는 데에 있지 그를 분석하고 재단(裁斷)하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 번 읽은 저자이기에(믿을 수 있기에: ‘미술 전시장 가는 길‘, ’예술가로 산다는 것‘) 박영택 교수의 ’그림으로 삶을 완성한 화가 이중섭‘을 읽어야겠다. 대구 시절 절친했던 시인 구상(1919 - 2004)의 도움으로 전시회를 열었으나 비참한 결과를 맞보고 “예술을 한답시고 공밥을 얻어먹고” 무슨 대단한 예술가가 된 것처럼 세상을 속였다고 자책하며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렸지만 줄곧 희망을 생각했던 화가 이중섭... 비참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은 사실보다 추사 김정희의 영향을 받아 소 그림의 터치를 추사체처럼 처리한 역동성과 연계성을 생각하도록 하자. 그래야 덜 우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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