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자기 여행 : 규슈 7대 조선 가마 편 일본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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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님의 ’일본 도자기 여행‘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도자기 전쟁‘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갈피갈피 일본의 도자기 명소를 찍은 화려한 사진들이 맛을 더한다. 저자가 논문이나 다큐멘터리 형식의 책을 쓰는 것을 넘어 엄청난 노력과 시간, 비용을 들이면서 방대한 도판을 곁들인 것은 그 노력이 우리 도자 산업에 대한 국민적 애정과 질책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나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도자기 전쟁‘이란 등식을 긍정한다. 일본은 조선을 침공하면 도공들을 생포해 올 것을 각 장수들에게 명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한 바탕에 도자기가 있다는 것, 일본 도자기가 한국에서 건너갔다는 사실에 자만심을 조금이라도 갖는다면 우리 도자 산업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것 등이다. 왜란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만든 일본의 도자기들은 유럽으로 수출되어 막대한 부를 낳았고 이는 메이지 유신이 추진될 수 있는 자본이 되었다. 이 자본을 바탕으로 일본은 대한제국을 합병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도자기의 운명이다. 메이지 유신 성공의 기반이 되었지만 후에 전국의 번을 현으로 바꾸는 폐번치현(廃藩置県) 정책이 펼쳐짐에 따라 다이묘(だいみょう: 10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일본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리며 권력을 누렸던 영주)들이 영지를 반환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이 운영하던 전국의 관요(官窯: 어용 가마)들이 폐쇄된 것이다. 팔산(八山: 일본어로는 핫산)이란 이름이 있다. 경북 고령군 운수면 팔산리에 살다가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인 팔산은 1601~1602년 무렵 후쿠오카의 다카도리산 서쪽에 가마를 열어 일본 도자기의 시초가 되었다.


관요 폐쇄로 인해 벌어진 9대 팔산과 10대 팔산의 갈등은 한국 도자기의 역사, 그리고 예술의 위상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도록 이끈다. 살아남기 위해 가마에 불을 지피고 민간에서 쓰이는 자기라도 만들어 팔아야 한다는 10대 팔산(아들), 대대로 현상물용 명기를 만들어 온 자부심으로 살아 왔기에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그릇을 만들 수 없다는 9대 팔산(아버지)... 9대 팔산은 뜻을 거스른 아들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유명(幽明)을 달리 했다. 작품전을 준비하던 10대 팔산은 영양실조와 폐렴으로 60세에 숨을 거둔다.


1973년 서울 신세계 백화점에서 다카코리 세이잔 여사의 작품전이 열렸다. 초대 팔산 입장으로는 11대 후손 팔산인 세이잔 여사의 몸을 빌려 하게 된 375년 만의 귀국인 셈이다. 여사는 주최측이 제공한 비행기를 마다하고 부산행 배를 이용했다. 초대 팔산이 붙잡혀 온 길을 따라 감으로써 그 영혼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어서였다. 책의 부제는 ’규슈의 7대 조선 가마‘이다. 가라쓰(당진唐津)를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조선 침공의 전진기지였던 곳이다. 가라쓰의 원래 이름은 한진(韓津)이었다. 고대 가야 사람들이 처음 이곳과 교류하면서 한민족의 나룻터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일본 도자기에 끼친 조선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가마는 사쓰마야키 가마이다. 정유재란 때 납치된 조선 사기장들에 의해 도자기의 요람이 된 곳이다. 심수관(沈壽官)을 빼놓을 수 없다. 사쓰마도기(薩摩燒)를 개창한 인물이 심수관이다. 심수관은 왜란 때 일본에 납치되어 간 조선인 도공 심당길의 후손이다. 심수관은 심수관가 15대를 총칭하는 말이다. 일본어로 아시데 가쿠(あして かく)라는 말이 있다. 발로 쓰라는 말이다. ’일본 도자기 여행‘은 그런 말을 붙이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귀한 책이다. 아니 단지 열심히 발품을 팔아 낯선 일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수많은 사진을 찍고 글감을 건져올린 노고는 빛난다.


저자는 훗날 자신이 죽어 한 줌 흙이 되었을 때 어느 사기장이 그 흙으로 하나의 찻사발을 만들 수도 있을지니 그것이 바로 억겁의 인연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 도자기 여행‘이 자랑스러운 것은 메이지 유신과 관련한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아리타 및 사가 현이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밝힌 것이라 말한다. 그간 우리 학계는 아리타의 출발이 이삼평공(公)이었다는 사실 또는 일본의 본격적 도자 문화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사기장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에만 매몰되어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아리타와 도자기가 한 역할에 대해서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도공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李參平)은 일본 아리타(有田), 이마리(伊萬里) 도자기의 비조(鼻祖)로 꼽힌다. 저자는 아리타 및 규슈 도자기의 의미는 조선 출신 사기장에 대한 연구만으로 종결되어서는 안 되고 그것이 일본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그래서 그것이 현대 일본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등의 총체적 관계를 모두 풀어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나 역시 물꼬를 튼 저자의 연구가 후속 연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는 점에서 저자와 생각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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