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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ㅣ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98
호안 푸니에트 미로 지음, 이경자 옮김 / 시공사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호안 미로(Joan Miro: 1893 - 1983)는 개인적 이름을 버림으로써 일반적 보편성을 얻는 과정을 통해 침묵 속에 숨어있는 소리, 부동 상태에서의 움직임, 무생물에서의 생명성, 유한상태에서의 무한성, 공백 사이에서의 형태, 익명성 안에서의 자기 자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개관 기념으로 ‘Joan Miro, the parade of obsessions' 전을 개최한 경기도 미술관의 미로 도록(圖錄)에 인용된 미로의 말이다.
왜 강박(强拍) 또는 망상(妄想)일까?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침묵 속의 소리, 부동 상태에서의 움직임, 무생물에서의 생명성, 유한상태에서의 무한성을 찾는 것은 일본의 유학자 오구라 기조가 말한 제3의 생명을 닮았다. 그가 제시한 제3의 생명이란 “어린아이가 보여주는 귀여운 몸짓, 더운 날 오후에 문득 느끼는 바람의 시원함, 꽃 한 송이가 서 있는 모습의 순진함.. ” 등이다. 기조가 말한 제1의 생명은 육체적 생명, 생물학적 생명을 말한다.
제2의 생명은 비물질적 생명, 종교적 생명 등을 말한다. 미로의 경우 침묵 속에 숨어있는 소리, 부동 상태에서의 움직임, 무생물에서의 생명성, 유한상태에서의 무한성, 공백 사이에서의 형태, 익명성 안에서의 자신을 찾는 것과 강박성, 망상 등이 어울리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것들을 강박적으로 추구했다고 하면 아귀가 맞는다. 도록에 의하면 미로의 작품은 11,000점 정도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전시회에 선보이는 미로 작품 수는 300점이니 고도로 압축된 비율의 수이다.
미로의 세 번째 손자인 호안 푸니에르 미로, 페르낭 브로델과 함께 일하기도 했던 글로리아 롤리비에르 라올라가 함께 쓴 ’미로: 추상과 기호의 장인‘은 미로에게 최초의 양식(糧食)과 색감을 부여한 것으로 카탈루냐와 마요르카 섬의 산을 꼽는다. 학생 시절의 미로는 점토를 반죽하고 축축한 덩어리를 잡아 누르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데생이나 회화에서 갖지 못했던 육체적 즐거움을 만끽했다. 미로 역시 고흐, 세잔, 쇠라의 작품 경향을 답습하다시피 한 시절이 있었다.
1918년 첫 개인전을 연 미로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당시 구매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미로는 동향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 - 1973)에게 늘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미로가 그린 포도나무 밑동은 미로 자신이 카탈루냐 땅에 쏟는 애착을 반영하듯 휘어져 있다. 이는 강박적인 애착의 결과이다. 28세에 연 첫 번째 국제전시회 역시 실패로 끝났다. 모색의 시기에 미로는 시가 자신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회화를 뛰어넘는 곳으로 자신을 인도했다고 말했다.
미로가 기호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것을 저자들은 그의 작품에 환상이 깃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한다. 미로는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등과 블로메가(街: Rue Blomet) 그룹에 속했었다.(블로메는 프랑스의 지명이다.) 전쟁(스페인 내전: 1936 - 1939)이 미로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전쟁은 미로로 하여금 무의식을 그대로 옮겨놓는 독특한 방식을 만들어 내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미로와 고흐에게 구두가 갖는 공통의 의미이다. 그것은 가난, 기아, 고통, 비극 등을 상징한다. 미로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같은 참여정신이 담긴 작품을 그리지 않은 것은 서술적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로는 여자, 별, 새 등을 그리는 데 강박적이었다. 미로가 에드가르 바레즈,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 지미 헨드릭스 등의 음악을 좋아한 것은 이채롭다. 미로는 지미 헨드릭스와 자신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로가 즐겨 읽은 문학작품들은 랭보, 아폴리네르, 로트레아몽 등의 것들이다. 미로는 그림과 시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미로는 청동검을 만들기도 했다. 숭배의 대상인 청동 여성상도 미로의 목록에 포함된다. “커진 육체는 영혼의 보충을 기다리고 있다.”는 베르그손의 말이 생각난다. 미로의 추상 세계,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이해하려면 새로운 눈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