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 후암동 골목 그 집 이야기
권희라.김종대 지음 / 리더스북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강원도 화천(華川)에 한옥 학교가 있다. 내 형편을 생각하면 가입을 망설이게 되는 목수 양성 학교이다.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목수(木手)의 길은 목수(木修)의 길이며 숲길을 걸어들어가 홀로 깊어지는 것”이라는 문구가 생각을 유도한다. 내 서재에는 ‘한옥 짓는 법’이란 책이 있다. 구입한 지 5년이 되어 부분 부분 탈색이 된 책이 내 꿈의 퇴색을 알려주는 듯 하다. 물론 아직 퇴색은 아니고 유보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건축, 공간, 서재, 마당 등을 키워드로 한 책들을 꽤 읽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집 사정은 상당한 격랑과 침체가 공존하는 듯 하다. 1인 가구가 많은 현실에서 회재(晦齋) 이언적의 독락당(獨樂堂)이 얼핏 대비되어 생각된다. 홀로, 고독함을 즐기는 집이지만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1인 가구와 독락은 너무 다르다. 우리는 어느덧 집 크기를 행복, 재산 등과 등치시켜 생각하곤 한다.


협소주택(狹小住宅)이란 개념을 생각해 보자. 집을 지을 수 없을 만큼 좁은 땅에 최상의 기술력과 디자인을 동원해 공간 활용도를 높인 주택을 말한다. 공사비가 저렴하지 않다. 끊고 버리고 떠나라는 의미의 단사리(斷捨離) 운동이 집은 그대로 둔 채 소비 또는 소유를 줄이는 것이라면 협소주택은 집 자체를 작게 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이렇게 협소 공간이란 개념을 주요하게 인지시키는 책, 획일적인 아파트에서 아이를 구출하려는 계획에 따라 골목으로 이루어진 동네에 집을 짓게 된 부부의 책이다. 아내는 실내 건축 디자이너이고, 남편은 영화 프로듀서이다. 부부는 불필요한 기름기를 뺀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시작된 자신들의 집짓기 프로젝트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말한다.


그들이 지은 집의 이름은 디자인 하우스이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구성을 취했다.(본문에는 희노애락이라 나오지만 정확한 것은 희로애락이다.) 부부는 쾌적하고 편리할 줄만 알아 살기 시작한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서의 생활이 골칫덩어리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부는 아파트의 획일성과 무작정의 학원 교육을 불편해 하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쾌적한 환경을 찾아 힘든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라는 말이 해당되는 사례이다. 부부는 자신들이 지은 집을 크래프트 홈으로 만들어 갔다. 집을 사람과 문화와 음악으로 채워간 것이다. 이런 집은 당연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정체성이 반영된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으며 고(故) 김현 평론가의 ‘두꺼운 삶과 얇은 삶‘이란 글을 생각했다. 그에 의하면 아파트에서의 삶은 인위적이고 표면적인 것만을 중시하는 얇은 삶이고, 땅집에서의 삶은 자연적이고 정신적인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두꺼운 삶이다.


사실 집, 하면 투기, 아파트 공화국, 폭력적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부정적인 개념들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부부가 정착하기로 마음 먹은 곳은 후암동이다. 몇 년 전 언론인인 서화숙 님의 ’마당의 순례자‘란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선택한 곳은 부암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후암동을 부암동으로 착각했다. 부암동은 서울의 이색 공간이라 할 만큼 문화나 정서 면에서 빛나는 곳이다.


그런데 후암동은? 부부는 왜 구도심의 낙후된 동네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성장과 개발 이전의 사람이 중요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닿았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 여정이 희(喜)에 담겨 있다면 로(怒)에는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 없이 출렁이는 땅값이라든가 전문가는 없고 훈수꾼만 넘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부부는 젊다. 걷기를 즐기고 세류에 편승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안목과 취향도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에는 안 해보고 후회하지 말고 경험을 통해 뭐라도 배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발품을 팔고 공을 들여 집을 짓다 보면 과정 자체를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상량식(上梁式)이 인상적이다. “’논어‘와 ’맹자‘를 탐독 중인 아버지가 문구를 정하고 취미로 캘리그라프에 한창 빠져 있는 어머니가 붓글씨를 쓰고 가구 만들기가 취미인 우리가 나무를 켜서 판을 만들고 전체적인 디자인을 맡기로 했다.”


부부는 축소인봉(築巢引鳳: 둥지를 만들어 봉황을 끌어들인다)이란 문구 양쪽에 예쁜 발자국과 손자국을 찍어 가족만의 상량판을 완성했다. 애(哀)는 건축 과정에서 벌어진 실망스런 사연들, 힘겨운 사연들이 담긴 장이다. 부부는 말한다. 자신들에게 집은 인생 역전이나 큰돈 버는 수단이 아니었다고. 다채로운 삶의 레시피를 모색하고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던 것 뿐이었다고.


이 장에는 편하게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들과 달리 맞춤식 집을 지을 때 발생하는 시공업자들과의 트러블들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예상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실제로 우리가 직접 그런 경우에 처할 수도 있기에 충분한 참고거리가 된다. “상황에 따라 업체에 맡길지 직접 시공할지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돈은 돈대로 쓰고 어이없는 결과만 떠안게 될 수도 있다.”


부부가 원한 공간은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요리를 하면 집 전체가 부엌이 되고, 책을 읽으면 서재가 되고, 잠을 자면 침실이 되고, 아이와 놀고 있으면 놀이방이 되고, 손님이 오면 응접실이 되는 공간을 말한다. 시공업체로서는 생소한 주문 사항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부부가 원한 것은 작아도 넓고 깊어 보이는 집이었다. 관건은 부부가 말했듯 15평 집에서 넓고 깊이 있는 공간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다시 김현 평론가의 두꺼운 삶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집 짓기는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것은 그만큼 많다. 부부가 원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가족의 웃음소리와 행복한 추억으로 넘쳐나는 공간이다. 마지막 장은 락(樂)이다. 참 행복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치른 노고와 생각 등을 생각하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님을 헤아려야 한다.


부부의 집은 부부와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까지 함께 층을 달리해 사는 가족의 공간이다. 덧붙여 사무실까지 갖춘 더할 나위 없는 여건을 갖추었으니 참 부럽기까지 하다. 부부는 작은 집이 더 마음 편하다고 말한다. 드디어 후암동 주민이 된 부부는 남산 도서관과 용산 도서관 이야기를 한다. “북촌에 정독도서관이 없었어도 이사를 왔을까? 아마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한 영화 평론가의 말과 달리 도서관을 보고 거처를 택한 것은 아니지만 듣기 좋은 이야기이다.


집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주거 형태에 따라, 거주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부부는 거창한 집짓기가 아니어도 본인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많다고 말한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책이다.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알찬 책이다. 얼마 전 경복궁 답사를 통해 집 정확하게는 궁궐의 유서(由緖)와 의미를 배운 나에게는 흥미있게 다가온 책이다.(강의를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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