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람들의 개성 여행
채수 외 지음, 전관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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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들의 개성 여행은 채수(蔡壽), 유호인, 남효온(南孝溫), 조찬한(趙纘韓), 김육(金堉), 김창협(金昌協), 오원(吳瑗) 등의 글을 묶은 책이다. 사가독서를 얻어 개성에서 멀지 않은 파주에서 여행을 하기로 한 결과물이다. 채수는 신우(辛禑)가 망령되게 요동 정벌을 획책하자 태조가 회군했다고 말한다. 신우는 우왕을 말하는 것으로 공민왕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조에서는 신돈의 아들이라는 의미에서 신우라고 불렀다.

 

채수는 태조의 옛집인 목청전(穆淸殿)에 가서 어진을 뵈었다고 말한다. 박연(朴淵)은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에 있다. 박연은 박연폭포를 이르는 말이다. 채수는 웅덩이 물이 넘쳐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데 마치 은하수가 거꾸로 걸린 듯 하다고 말한다. 이는 이백의 요간폭포괘장천(遙看瀑布掛長川; 저 멀리 폭포는 긴 강을 걸어 놓은 듯)이란 말을 연상하게 하는 말이다. 채수는 박연폭포를 와 보지 못했다면 항아리 속 초파리 꼴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박연폭포는 재인폭포처럼 남편과 아내가 모두 죽은 전설을 가진 폭포다. 관음사는 이성계의 잠저 시절 원찰이다. 본문에 화담(花潭) 이야기가 나온다. 서경덕이 태어나 살던 개성부(開城府) 화정리(禾井里) 계곡의 물줄기가 하나로 만나 못을 이루었는데, 그곳에 진달래가 비치는 것을 보고 못의 이름을 화담(花潭)이라 하였다. 서경덕이 그곳의 이름을 따 화담이란 호()를 지었다. 경천사(敬天寺)는 기황후의 원찰이다.(승상 탈탈의 원찰이란 말도 있다.) 경천사는 10층 석탑으로 유명한 사찰이다.(78 페이지) 채수에 의하면 벽란강(碧瀾江)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은 예성강(禮成江)이고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져 바다로 흘러드는 곳은 조강(祖江)이다.

 

채수는 다만 구경하느라 지켜야 하는 바를 잃어버린다면 이는 옛사람이 경계하는 바이니 우리의 유람이 혹시 너무 안일한 것은 아니었던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고려 수창궁은 성종과 목종 연간에 지은 궁이다. 김종직의 문인 뇌계(㵢溪) 유호인은 박연폭포의 물살이 흩어지면 만 필의 베가 되면서 봉우리를 흠뻑 적시고 땅덩이를 뒤흔들면 마치 은하수가 꺾이어 땅에 꽂히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유호인은 10여년이 넘는 동안 공민왕은 한 여자 때문에 백성들만 힘들게 했으니 참으로 미혹된 자들이 거울삼을 만하다고 썼다. 임진강은 사가독서를 얻은 조선 성종대의 선비들이 개성에 가기 위해 건넌 강이기도 하다. 김육(金堉)의 천성일록(天星日錄)은 선조대에 기록된 글이다. 태종대(太宗臺)가 나온다. 천마산은 하나의 산이었는데 박연폭포를 기준으로 동쪽은 성거산, 서쪽은 천마산이라 부른다.(141 페이지) 김육은 자신을 잘못 안내한 사람 때문에 화담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언젠가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고 붉은 단풍이 들면 약속한 대로 박연폭포와 차일봉 사이를 다시 찾아가 보고 화담 위에서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서화담 선생의 영전에서 지난번에 찾아뵙지 못한 죄를 용서받고자 한다고 말한다. 농암 김창협은 숭양서원을 이야기한다. 김창협은 후조(後凋)의 기상을 엿보는 듯 하다는 말로 정몽주를 언급한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개경은 유학적 성지(聖地)가 되었다. 개경 여행은 박연폭포 찾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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