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물질 - 물질이 만든 문명, 문명이 발견한 물질
스티븐 L. 사스 지음, 배상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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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무엇일까? 무정형 고체, 비결정질 고체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스티븐 사스는 얼어붙은 액체에 가깝다고 말한다. 사스는 흑요석은 검은 색을 내는 먼지와 다른 원자들이 섞여 있(어서 검)다는 말을 한다. 차탈회위크는 주변에 활화산이 있어서 흑요석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기원전 6000년대에 이르러 차탈회위크는 기술혁신의 중심지 자리를 잃었고 그 자리는 대도시 문명을 일으킨 메소포타미아로 넘어갔다. 점토(粘土)는 인간이 열을 가해 물성을 바꾼 최초의 물질이다. 돌, 나무, 뼈 등의 재료로 도구나 무기를 만드는 것은 재료의 형태를 바꾸는 일이지만 점토를 구워 그릇을 만드는 것은 재료의 특성을 바꾸는 일이었다.


원자구조가 변하면 물성도 변한다. 현대 도시는 콘크리트, 유리, 세라믹, 금속과 같은 다양한 재료의 놀라운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기념비나 다름없다. 금속은 여러 면에서 돌이나 점토와는 전혀 다르다. 금속은 돌이나 점토보다 전기와 열을 훨씬 잘 흘려보낸다. 금과 은은 도구나 무기를 만들기에는 강도가 너무 약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인간의 탐욕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었다. 금과 은에 무심한 사람이 보기에는 그다지 쓸모도 없는 금속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음모를 꾸미고 전쟁을 치르고 목숨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기이하기만 할 것이다.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금과 은이 인류 역사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이라고는 화폐의 역할을 해줬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몇 세기가 지나고 전기와 사진 장치가 발달하면서 이 아름답고 희귀한 물질은 새로운 역할을 하였다. 철은 지각에 많이 함유되어 있기는 하지만 순수한 형태로 발견하기가 아주 어려워 한때는 금보다 값진 금속으로 대접받았다. 철은 석탄과 더불어 근대 세계를 산업화로 접어들게 한 원동력이었다. 


산업혁명을 촉발한 발명품은 단연코 증기기관이었다. 증기기관은 처음에는 황동으로 만들어졌지만 철로 주조할 수 있게 된 이후 대량 생산되었다. 고대의 대장장이들은 철을 장시간 가열하는 동안 탄소가 철에 흡수 되는 것이 철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이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한다고 생각했다. 탄소가 철의 강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맡는 역할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쯤에 밝혀졌다. 유리는 판유리 상태로는 강도가 약하지만 머리카락 만큼 가느다란 상태에서는 강철 만큼 강하다. 


이와 달리 금속은 굵기가 긁든 얇든 항복 강도와 파괴 강도가 똑같이 유지된다. 순금속은 산산조각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 법하다. 유리는 왜 크기에 따라 이토록 다른 특성을 보이는 걸까? 그리고 왜 그렇게 약할까? 사실 유리는 물과 비슷한데 물보다 점성이 훨씬 높은 액체가 과냉각 즉 얼어붙어 있는 상태다. 실제로 유리는 결정이 아닌 비결정성 구조를 이루고 있다. 유리를 이루는 재료는 실리카(이산화규소)다. 실리카의 구조는 산소 원자 네 개가 실리콘 원자 하나를 감싸는 형태의 규산사면체다. 


흑요석은 실리카가 땅속 깊은 곳에서 녹아 있다가 화산 활동으로 지표로 올라온 뒤 냉각, 경화된 것으로 자연적으로 생성된 반투명의 검은 유리다. 유리의 장점은 투명하다는 것이지만 초창기 유리는 불투명했다. 유리 속에 들어간 기포나 조그만 입자가 빛을 강하게 산란시켰기 때문이다. 유리는 철과 같은 불순물이 섞여 들어가면 색상을 띤다. 석탄이 없었다면 기계화된 산업으로 다양한 제품군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산업혁명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산업화의 발전 과정에서 영국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주요 이유는 영국에 석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200년간 세계 최대의 석탄 공급국이었으며 19세기 말에는 미국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산업혁명 이전 시대에 석탄을 대량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럿 있었다. 석탄 채취가 용이한 광맥에서 석탄이 바닥남에 따라 더 아래로 파고 내려가야 했다. 홍수가 곤란한 문제로 떠올랐다. 


탄광 소유주는 양수(揚水) 작업에 사용할 새로운 동력원을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증기가 내뿜는 에너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증기기관은 산업혁명 이후에 수력을 대신하여 주요 동력원으로 사용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연결된 기술 혁신은 대개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등장했다. 스페인과 같은 가톨릭 국가에서는 오랜 동안 탐구 행위를 억압했다. 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있을 때 프로테스탄트 종파는 탐구 활동을 장려했다. 


대장장이들은 기원전 수백년 젼에 강철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탄소를 철 속에 녹여 넣기가 어려운 문제 등의 이유로 강철로는 검, 단검과 같이 얇은 도구밖에 만들지 못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산업혁명의 상징인 증기기관, 기관차, 기관차 선로, 선박, 교량은 모두 강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연철이나 주철로 제작되었다. 18세기 말에 이를 때까지도 대장장이들은 철에 탄소를 넣어야 강철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이아몬드는 최상급이란 수식어가 들어맞는 광물이다. 연마 작업에 사용되는 산업용 다이아몬드 가격은 보석용 다이아몬드 가격의 1/100이다. 숯은 유리처럼 비결정성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연필 심인 흑연은 육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다이아몬드는 입방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사면체의 꼭짓점에 놓인 탄소 원자 네 개가 중앙에 있는 탄소 원자 하나를 감싸고 있고 이러한 구조가 3차원으로 쌓여서 탄탄한 결정을 이룬다.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며 모든 물질 중에서 가장 높은 탄성계수를 자랑한다.(그 어느 물질보다 거의 두 배 이상 높다.) 다이아몬드는 열 전도성은 아주 높고 전기 전도성은 아주 낮다. 대개의 금속은 열 전도성과 전기 전도성이 모두 높다. 열역학은 탄소가 흑연으로 존재할 때 상온, 대기압 조전에서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다이아몬드는 땅속 깊은 곳에서 탄소에 고온, 고압을 가해야만 생성된다. 전문가들은 다이아몬드가 흑연으로 돌아가려면 수십 억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열역학은 땅속 160km 아래에서 다이아몬드가 형성되는 조건대로 흑연에 대기압의 5만배에 달하는 압력과 2,000도의 열을 가하면 다이아몬드가 형된다고 설명하지만 이제껏 다이아몬드를 얻으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문명과 물질은 돌부터 실리콘까지 세상을 바꾼 차가운 것들의 역사라는 부제처럼 다양한 물질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본문에 이런 글이 있다. “사실 강철이 대량 생산되는 과정은 내가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보다 더 복잡하다.”(251 페이지)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잘 설명했으나 한계 때문이겠지만 전체적으로 책이 어렵다. 저자가 가진 관점 또는 관심사가 독자인 나의 기대와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른 책을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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