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해서 흥미진진한 지리 이야기 - 지구 생태계부터 인종·국경·도시 이야기까지
김성환 지음 / 푸른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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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潮境)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 기수역(汽水域)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 석호(潟湖)는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자연 호수다. 연천에는 이런 곳들이 없지만 점이지대(漸移地帶)인 DMZ, 두 강(한탄강, 임진강)의 합수지점(도감포), 군사분계선과 38도선의 교차지점 등이 있다. 게다가 자연환경 보존과 활용이 균형을 이루는 지질공원이 있다. 연천은 이런 곳이다. 김성환의 애매모호해서 흥미진진한 지리+a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4화 애매모호함의 가치 중 점이지대 DMZ의 가치와 새로운 미래라는 챕터가 눈길을 끈다. 연천에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흥미진진한 지리 + a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지리 이야기와 사회 이야기, 국제 정치 이야기가 두루 포함되어 있다. 지리 이야기 옆의 + a란 말을 얼핏 읽지 못하고 책을 구입했다. 다시 말해 작은 글씨로 쓰인 지구 생태계에서 인종, 국경, 도시 이야기까지란 부제를 읽지 못했다. 물론 내용면에서 읽을 만하다. 아쉽다는 것은 지리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리교육을 전공하고 고교에서 지리교사로 일하는 분이다. 하나 덧붙일 것은 애매모호해서라는 말보다 중간적이어서나 중립적이어서나 회색지대여서라고 하는 게 어떨까 싶다. 애매가 일본식 한자라는 말이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단 애매와 모호 공히 생경하게 들리는 말이라는 말은 할 수 있겠다. 새겨들을 말은 인종은 과학적 개념이 아닌 사회적 개념이란 말이다. 인종이란 말은 피부색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기 위한 방편은 물론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에 따라 사용되기 시작한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인간의 유전체는 99.9% 일치할 정도로 모든 인간은 동일 종이다. 


제인 구달은 생물다양성을 거미줄 즉 생명의 그물망으로 비유했다. 이에 따르면 거미줄이 하나 둘씩 끊어지기 시작하면 약해질 수 밖에 없듯 동식물의 종도 하나 둘씩 사라지면 지구 안전망에 구멍이 생기고 균형이 무너진다. 그물망이란 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목초지에서 초식동물들이 풀을 뜯으면 식물에 닿는 햇빛의 양이 증가해 생물다양성이 증가한다는 말을 통해 전형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사안이다. 초식동물들은 지속적으로 식물을 섭취하여 특정 식물이 너무 크게 자라 태양빛을 가리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45 페이지)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섞이는 것이 순리라는 의미다. 그런데 국가와 도시, 시골마을, 소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많을수록 해당 지역 언어가 소멸 위기에 처할 위험이 더 커진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소통은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저자는 언어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것 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53 페이지) 햄버거의 시초가 몽골인들의 전투식량인 생고기라는 사실(64 페이지)은 흥미롭다. 


산지도 아니고 평야도 아닌 구릉의 가치와 매력이란 글은 어떤가. 구릉(丘陵)은 언덕의 다른 이름이다. 언덕은 산이라기에는 낮고 평야라기에는 높은 모호한 지형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지질시대를 거치면서 침식, 풍화작용을 많이 받아 평탄화된 지형이 많다. 구릉은 생물다양성에 기여한다. 2011년 서울 강남 우면산 산사태는 구릉지대를 훼손하고 난개발을 한 탓에 일어난 인재(人災)라 할 수 있다. 제주 오름은 구릉에 가까운 지형이다. 연천의 특산물인 율무는 구릉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점이지대인 DMZ는 면적이 907km²로 한반도 면적(220, 748km²)의 0.4%를 차지한다. DMZ는 전쟁을 겪은 폐허에서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로 거듭난 공간이기도 하다. 한강 하구 중립지역은 주요 철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주목하는 구역으로 2006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한반도의 동서생태축인 DMZ는 남북생태축인 백두대간과 함께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이기도 하다. 동서생태축은 셋으로 크게 나뉜다. 1) 중동부 산악지형, 2) 한탄강 유역 화산지대인 철원평야와 연천을 포함하는 곳으로 임진강이 있고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겨울을 나는 중서부 내륙지역, 3) 한강과 임진강 하구를 포함해 대규모 습지와 갯벌이 발달한 기수역(汽水域)인 서부지역이다. DMZ 일원은 산악지형인 동부지역부터 하구와 갯벌의 평탄지역인 서부지역에 걸친 동고서저(東高西低)를 이룬다. 우리나라 자체가 동고서저 지형이다.


플라톤은 그쳐야 할 곳에서 머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 말했다. 소동파는 “나의 문장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나와 평지에 차고 넘쳐서 하루에 천리라도 어렵지 않게 흘러간다. 산과 바위와 더불어 굽이쳐 꺾임에 이르러 부딪히는 사물에 따라 모습을 부여하기에 제대로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바는 당연히 흘러야 할 곳을 항상 흐르다가 마땅히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항상 멈춘다는 것뿐이다. 그 밖의 것은 비록 나라고 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갯벌은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겨 침수되고 썰물 때는 땅처럼 드러나는 바닷가의 벌판이다. 갯벌은 하천에 의해 흙모래 공급량이 많고 조차(潮差)가 크며 수심이 얕고 해안선이 복잡한 곳에서 발달한다. 우리나라 동해안은 성질이 다른 한류(寒流)와 난류(暖流)가 만나는 조경수역을 이룬다. 무지개를 보면 알 수 있듯 자연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계선상의 아름답고 다양한 색을 거느린 곳이다. 


BBC에서 흔히 쓰이는 비유가 있다. 세상은 시소에서 수레바퀴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수레바퀴의 바큇살처럼 이해관계가 360도로 퍼져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지방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너무 서울, 넓게 보아 수도권 중심의 나라다. 자연의 경계가 그라데이션(gradation)적이듯 즉 단계적으로 차이를 드러내듯 인간이 구분해서 정한 경계는 필연적으로 애매모호성을 띤다. 


갈라파고스 제도(諸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후쿠오카 신이치는 갈라파고스 제도는 지구의 동적평형 위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잡으며 존재한다고 설명하며 지금도 여전히 지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움직임의 한복판에 있다고 썼다.(‘생명해류’ 139 페이지) 갈라파고스를 소유한 에콰도르는 어떤가.(에콰도르에서 갈라파고스는 1,000km정도 떨어져 있다.) 적도를 지나는 13개 나라 가운데 에콰도르는 대표적이다. 이 나라의 수도 키토는 북반구 별과 남반구 별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193 페이지) 해발고도가 2, 850미터로 높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호주 수도가 캔버라로 정해진 이유다. 캔버라는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의 중간 위치에 있는 이점 때문에 어부지리격으로 수도가 되었다. 적도에 걸쳐 있는 갈라파고스의 수도 키토가 해발고도가 높아 남, 북반구의 별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호주 수도로 캔버라가 정해진 것도 자연의 순리일까? 역리(逆理)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캔버라는 이점이 많기에 수도로 정해졌다. 단 자동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세상에는 오류, 비상식 등이 가득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인간 또는 사회는 자연이 아니지만 자연을 따라야 한다. 가장 시사적인 글은 전략적 모호성이 절실한 대미(對美), 대중(對中) 관계라는 말이다.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닌 균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두 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리외교를 전략적으로 펼쳐야 한다.(23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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