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놓친 역사, 공간으로 읽는다 금요일엔 역사책 3
여호규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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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학과를 졸업한 저자가 다양한 공간이론을 접하고 쓴 책이다. 종래 역사 연구가 인간과 시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에 공간 중심으로 역사를 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복안이다.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근대 시기는 공간의 제약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공간적 구분과 차별의 형태로 세계관이나 천하관이 표출되었다. 시간 우위의 역사 인식은 근대사회로의 전환과 더불어 형성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시간 우위의 역사관의 토대 역할을 했다. 진화론적 사유방식은 지구상에 같은 시기에 공시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형태를 시간적 선후를 달리하며 서로 다른 시기에 존재했던 것처럼 재배열했다. 일제도 시간 우위의 역사관을 활용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중요한 사실은 인류 초창기에 단순히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던 공간이 역사의 전개와 더불어 끊임없이 새롭게 재생산되며 사회적 산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저자는 역사에서도 위치뿐 아니라 장소와 공간 등 다양한 개념을 받아들여 역사의 무대인 공간을 여러 각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고구려의 예는 흥미롭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농경사회였다. 그렇기에 농사에 필수적인 물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고구려인들은 강물이 풍부하게 흐르는 압록강을 신성시하는 정소 정체성을 형성했을 것이다. 장소, 장소 정체성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많은 사료를 새롭게 읽기 위한 중요한 개념 장치다.(50 페이지)

 

장소와 공간은 지리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장소(場所)의 장(場)은 떠오르는 태양<양; ?; 볕 양>을 제사지내던 곳이고 소(所)는 도끼<근; 斤>를 든 지위 높은 자가 있던 곳을 뜻한다. 공간(空間)의 공은 끌 따위의 공구로 꿰뚫은<공; 工> 구멍<혈; 穴>처럼 비어 있는 곳을 의미하고 간은 달빛<월; 月>이 새어드는 문의 빈틈과 같은 어떤 사물의 사이를 지칭한다. 장소가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는 한정된 지점을 지칭한다면 공간은 텅 비어 있는 무한한 공간을 의미한다.

 

공간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요소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맞는 개념이다. 삼국의 특이함은 주목할 만하다. 삼국은 대체로 6세기 중반을 전후해 격자형 가로구획을 조영(造營)하기 시작했다. 삼국 모두 중앙집권체제를 정비한 후 격자형 가로구획을 조영했다. 대규모 가로구획의 조성과 더불어 기존의 장소감이 거의 소멸되었기 때문에 각 가로구획과 택지의 특성이나 장소감은 각급 사용 주체에게 지급한 이후 새롭게 형성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주거지에 대한 도성민의 장소감은 주로 택지 면적의 규모에 의해 형성되고 이는 도성민에게 자신의 신분을 각인시키는 매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도성의 공간 재배치를 통해 도성민에게 택지 면적을 차등 지급함으로써 자신의 신분적 위상을 자각하여 신분제에 순응하도록 만들고 고대적 신분제를 더욱 견고하게 구축한 것이다. 격자형 가로구획은 왕궁을 정점으로 하는 도성 체제의 위계적 공간구조를 창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홍순민에 의하면 경복궁 내부에 국왕의 거처뿐 아니라 오늘날의 국회의사당(근정전)과 대통령실(사정전)이 모두 존재했다. 경복궁이 논의된 것은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삼국 초기의 도성으로 가더라도 경복궁과 같은 왕궁을 만나기 힘들 것이란 말을 하는 과정에서다. 고구려 초기에 가장 중요한 국가제의는 왕궁 좌우의 큰 집에서 거행된 종묘 제례나 사직 제사가 아니라 동맹이라는 제천행사였다.

 

가장 중요한 국가제의는 왕궁 주변이 아닌 압록강이라는 천연의 자연공간에서 거행되었다. 삼국 초기에 왕궁 남쪽의 남당(南堂)은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중추 공간의 역할을 수행했고 왕궁은 왕이 소속된 부의 정치 중심지라는 위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왕궁 역시 사회적 생산 공간이었다. 공간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이지만 근대 역사학에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근대사회로의 전환과 함께 각종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공간의 압축과 절멸 현상이 일어났다.

 

시간 우위 역사관의 기준은 서구가 이해한 근대문명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두 축으로 삼아 전개되었다. 시간은 매 순간 변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지만 공간은 별 다른 변화 없이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거의 모든 역사서는 시간의 변화를 기준으로 서술되었다. 공간을 별도로 다룬 경우는 많지 않다. 저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다양한 공간이론을 다소 장황하게 서술했고 공간이론을 한국 고대사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다소 성급한 결론을 내린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인 바 이는 공간을 통한 역사 연구를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널리 이해해주실 것을 바란다는 말을 했다.

 

처음 책을 접하면서 어떤 역사의 인물을 시간 흐름에 따라 이해하던 방식을 공간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다소 또는 꽤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구의 공간 이론을 읽어야 할 필요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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