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주 들은 말이 후크 고지, 폭찹 고지, 와이오(Wyoming) 라인 등의 말이었다.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 사미천 왼쪽인 후크 고지의 후크는 지형이 쇠고리 모양이어서 붙은 이름이고 연천군 천덕산 일대의 폭찹 고지는 지형이 미국식 돼지고기 요리인 폭찹을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와이오밍은 의문이었다. 이 라인은 한국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인 리지웨이 장군에 의해 설정된 연천 - 전곡 - 철원 - 화천의 방어선을 말한다. 리지웨이는 서쪽의 임진강에서 시작해 화천을 지나 양양까지 이어지는 캔자스 라인도 설정했다. 


중요한 사실은 와이오밍이라는 미국의 주명(州名)을 붙인 데에 별 이유가 없고 단지 와이오밍이 캔자스보다 위도상 북쪽에 자리하기 때문이란 점이다. 존 맥피는 북아메리카 대륙을 지질학적으로 탐사한 다섯 편의 작품을 하나로 묶은 '이전 세계의 연대기'에서 지질학자들의 연구방식에는 그들이 어떤 종류의 땅에서 자랐는지가 드러난다고 말하며 이와 관련해 와이오밍의 한가운데서 태어난 지질학자의 삶보다 더 훌륭한 본보기는 없다고 덧붙였다. 


맥피에 의하면 무심히 보고 지나칠 와이오밍 롤린스의 심심한 풍경 속에는 그랜드 캐니언의 웅장한 암벽보다 훨씬 더 긴 시간(26억년)이 펼쳐져 있다.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있는 이 주는 데이비드 러브라는 지질전문가로 인해 이름이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지질도가 암석이 아닌 다양한 논문과 보고서를 짜깁기해 시간에 근거해 만든 것들인데 데이비드 러브는 오로지 암석만 보았다. 맥피는 데이비드 러브는 높은 자리에 앉아서 지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현장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인상적인 말은 데이비드 러브와 겨루려면 아주 많이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질학은 이런 학문이다. 철학자 김영민 교수가 니체의 말을 빌려 "오직 걷고 있는 자만이 나와 인연이 있다"고 했거니와 이 선언에서 나를 지질학이라 바꿔도 좋을 듯 하다. 단 여기서 걷기는 필요조건일뿐이어서 그 자체로 결과물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 걷더라도 염천(炎天)의 8월은 지난 뒤에라야 가능하리라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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