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色을 입다 - 10가지 색, 100가지 패션, 1000가지 세계사
캐롤라인 영 지음, 명선혜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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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영의 ‘패션, 색(色)을 입다’는 의상과 의복에서 열 가지 색이 지닌 중요성을 탐구한 책이다. 열 가지 색이란 검은색, 보라색, 파란색, 녹색, 노란색, 주황색, 갈색, 빨간색, 분홍색, 흰색이다. 블랙은 물체가 가시적 파장을 삼켜 색 스펙트럼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보인다. 블랙이 색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은 블랙 지방시 드레스를 기억하는가. 또한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에 나오는 검은 옷을 입고 홀로 선 인물을 기억하는가. 그런가 하면 마릴린 몬로는 어떤가. 보라색은 호불호가 갈리는 색이다. 흥미로운 점은 보랏빛이 많이 감퇴한 독특한 모브색이 폐경성 모브라고 칭해진다는 것이다. 모브는 mauve다.

 

이 색은 핑크 - 퍼플 색조를 띤 당아욱 꽃에서 이름을 따온 색이다. 아르누보 운동을 대표하는 보라색은 1960년대 후반 히피 운동의 사이키델릭을 나타내기도 한다. 지미 헨드릭스는 보라색을 스모키 사이키델릭과 연관지어 퍼플 헤이즈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헨드릭스는 자신이 볼 수 있는 색은 보라색뿐이라며 마약 중독을 자백했다. 보라는 민주당의 파란색과 공화당의 빨간색이 섞인, 통합을 뜻하는 색이기도 하다.

 

1774년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짝사랑 때문에 자살을 택한 젊은 예술가의 이야기를 담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출간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베르테르는 파란 연미복을 입고 노란 조끼와 반바지를 입은 캐릭터다. 파란색은 슬픈 감정과 연관성이 있지만 하늘과 바다 사이의 공간을 나타낸다. 충성스럽고 진실하며 차분하게 여겨지는 색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파란색을 자주 언급하는 것이 아닐까?

 

'위대한 유산’에서 기네스 펠트로가 입은 그린색 의상을 기억하는가. 녹색은 우리에게 필수 요소인 물과 생명, 머리를 맑게 하고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식물과 나무에서 나오는 풍부한 산소를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죽음과 부패를 상징하는 곰팡이, 독이나 독성도 보여준다. 압생트는 쑥으로 숙성시킨 녹색의 독주를 의미한다. 녹색은 에덴동산의 뱀이 화와를 유혹하여 사과를 먹게 함으로써 사람을 타락시킨 색이다.

 

모든 함축성과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는 녹색은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휴식과 같은 색감이다. 노란색은 꽃잎을 활짝 펴고 햇볕을 정면으로 받는 해바라기나 1990년대 광란의 포스터 또는 티셔츠에 인쇄된 형광노랑빛 스마일 페이스와 같이 여름날과 낙관주의를 연상하게 한다. 노란색의 황금빛이 비슷한 색조의 귀금속만큼이나 항상 가치 있게 여겨진 것은 아니었다.

 

중세 시대의 노란색은 온통 부정적 이미지였다. 노란색은 질병, 질환 및 황달을 암시했으며 4대 체액 중 하나인 황담즙과도 관련이 있다. 노란색 직물을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천연 물질이 있었지만 노랑은 오래 지속되는 빨강과 파랑에 비해 빠르게 퇴색했기에 불신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 사용한 고운 점토와 산화철로 만든 붉은빛이 감도는 황토색 염료를 비롯하여 고대 이집트인들이 무덤에 칠한 유독성 광물 색소 리얼가(realgar) 등 오렌지빛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렌지색이 무지개의 공식 색상으로 이름을 가진 것은 최근 일이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 오랑주리 미술관이다. 오랑주리는 오렌지 온실이란 의미다. 갈색 천은 사회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 저렴하고 거친 직물이었다. 1970년대는 세계적으로 정치적 격변과 불안정의 시기였다. 그래서일까. 자연의 색과 가깝고 전통적이며 인정적인 오렌지와 녹색이 결합된 갈색 톤이 사랑받았다.

 

빨간색은 사이렌, 교통, 정지신호, 영화‘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이 입은 바람막이처럼 경고의 신호를 나타낸다. 구석기 시대에도 빨간색은 보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에콰도르 북부에서 칠레 남부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했던 잉카는 붉은 색을 고대 신화적 기원과 연관지었다. 18세기 암스테르담 염색업자들은 코치닐(Cochineal; 연지벌레 암컷) 염료에 소금과 강황을 첨가하여 짙고 보랏빛이 감도는 진홍색과 밝고 진한 선홍색, 스칼렛 오렌지를 만들어냈다.

 

참나무 수액을 먹고 사는 이 작은 곤충으로부터 염료를 추출하는 것은 무척 힘든 과정이다. 붉은 염료는 암컷에서만 나오는데 알을 낳을 준비를 하는 순간에 포획해야 한다. 햇볕에 말리고 으깨는 과정에서 붉은 즙이 분비된다. 아메리카 대륙의 코치닐과 경쟁할 붉은 염료는 없었다. 가시배 선인장을 먹고 자라는 이 곤충은 가장 밝으며 빛이 바래지 않는 붉은 색을 만들어낸다.

 

연지벌레처럼 미국산 코치닐 역시 암컷만을 사용해 햇볕에 말리고 물에 담가 추출하지만 연지벌레 염료 추출물의 10배를 생성하기에 이내 모든 붉은 염료를 대체했다. 빨강은 혁명의 색이기도 하다. 미국인과 유럽인은 핑크색을 가장 분열적인 색이라 생각하지만 일본에서는 귀엽다는 뜻의 가와이로 인식한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포스트 페미니스트 렌즈로 프랑스 왕비의 삶을 펑크적 요소와 핑크의 달콤함으로 표현했다. 섬세한 흰색 직물의 아름다움에는 식민주의, 노예제도, 섬유 산업의 노동자 착취라는 진정한 공포가 비밀리에 숨어 있다. 패션과 얽힌 색의 역사를 알려면 읽을 책이 ‘패션, 색을 입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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