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 시행착오, 표절, 도용으로 가득한 생명 40억 년의 진화사
닐 슈빈 지음, 김명주 옮김 / 부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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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슈빈의 '자연은 어떻게 발명 하는가'는 성실한 지적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암석을 깨며 수십 년을 보내는 동안 생명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밝힌 저자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알면 과학연구는 세계적인 보물찾기로 바뀐다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자에게 멸종이 시대에 뒤쳐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지적 활동에 계속 참여할 방법은 유전학과 발생생물학, 그리고 DNA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어떤 유전자 조합이 개구리를 송어, 침팬지, 인간과 다르게 만드는지 DNA 수준에서 물을 수 있다고. 저자는 연구자는 인생을 걸 만한 연구주제를 연구실이나 발굴현장에서 찾지만 자신은 강의실 스크린에 비춰진 한 장의 슬라이드에서 찾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날갯짓 비행이 진화하려면 날개, 깃털, 속이 빈 뼈, 높은 대사율 등 일군의 발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뼈가 코끼리처럼 무겁거나 대사가 도롱뇽처럼 느리다면 날개가 진화 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큰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 몸 전체가 변해야 하고 게다가 많은 형질이 동시에 변해야 한다면 어떻게 큰 진화적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폐로 공기호흡하는 물고기가 전 세계에 있었고 더구나 수억년 동안 지구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변칙의 발견이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베시포드 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부레와 폐가 같은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같은 기관의 다른 버전이라고 주장한 사람이다. 저자는 놀랍도록 많은 물고기가 장시간 공기 호흡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수백종의 물고기가 자신이 서식하는 물에 산소농도가 떨어지면 공기를 삼킬 수 있다. 이 물고기들은 어떻게 이런 재주를 부리는 걸까?

 

폐어(肺魚)는 물속에 살면서 대체로 아가미로 호흡하지만 물에 산소농도가 떨어져 대사를 유지할 수 없게 되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공기를 마셔 폐로 보낸다. 공기 호흡은 기묘한 물고기에만 있는 기묘한 예외가 아니라 많은 물고기가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다. 폐라는 발명은 동물이 육지를 걸을 수 있게 진화하면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물고기는 동물들이 땅을 걷기 한참 전부터 폐로 공기 호흡을 하고 있었다. 물고기 후손들이 육지로 진출하면서 일어난 일은 새로운 기관의 등장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기관의 기능 변경이었다. 게다가 사실상 모든 물고기가 폐든 부레든 어떤 종류의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공기 주머니는 물속에서 살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나중에는 육지에서 살고 호흡하기 위해 쓰이게 되었다.

 

동물이 육지로 올라올 때 이런 변화는 새로운 기관의 탄생을 수반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다윈이 일반론으로 말했듯이 기능의 변화를 수반했다. 1861년 독일의 한 석회암 채석장에서 놀라운 화석 한 점이 발견되었다. 매우 잔잔한 호수 환경에서 퇴적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석회암에 깃털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생물의 실체가 아니라 틀만 남은 쥐라기의 인상화석이었다.

 

쥐라기는 알렉산더 폰 훔볼트에 의해 명명되었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에 걸쳐 있는 쥐라 산맥의 독특한 특징의 지층을 보고서였다. 그곳에서는 소용돌이 모양의 껍질을 지닌 암모나이트라는 생물 화석이 많이 발견된다. 쥐라기는 소용돌이 모양의 껍질을 지닌 생물의 시대일뿐 아니라 공룡의 시대이기도 하다. 저자는 깃털은 조류만의 특수한 성질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육식 공룡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었다고 말한다.

 

육식 공룡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새처럼 되어 갔다. 저자는 묻는다. 공룡의 깃털은 무엇에 쓰였을까? 일부 고생물학자들은 깃털이 짝짓기 상대에게 매력을 과시하는데 쓰였다고 주장했다. 또 원시적인 솜털 모양의 깃털이 단열재처럼 작용해 체온을 높게 유지하는데 쓰였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어쩌면 깃털은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했을지도 모른다. 공룡에게 깃털의 역할이 무엇이었든 깃털의 기원이 하늘을 나는 것과 무관했다는 점은 틀림없다.

 

물에 사는 동물이 땅에 진출했을 때 폐와 사지가 그렇듯 비행에 쓰인 여러 발명도 비행이 기원하기 전에 생겼다. 깃털은 물론이고 속이 빈 뼈, 빠른 성장속도, 높은 대사율, 날개돋친 팔, 경첩 같은 관절이 있는 손목은 모두 원래는 땅에서 민첩하게 뛰어다니며 먹이를 잡던 공룡에게 생긴 것이었다. 큰 변화는 새로운 기관의 탄생이 아니라 오래된 형질을 새로운 용도나 기능으로 전용함으로써 일어났다.

 

깃털은 새에서 하늘을 날기 위해 탄생했으며 폐는 동물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 그 동안의 통념이었다. 이런 생각은 이치에 맞고 자명하게 들리지만 틀렸다. 게다가 우리는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100여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깃털은 비행이 진화하면서 탄생한 게 아니었고 폐와 사지도 동물이 육상으로 진출하면서 진화한 게 아니었다. 생명사에 길이남을 이런 대변혁과 그밖의 변혁들은 기존 형질의 전용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생명사에 길이 남을 변화는 곧게 뻗은 탄탄대로를 걷지 않았다. 그 길은 우회로, 막다른 골목, 좋지 않은 시기에 출현하는 바람에 실패한 발명들로 가득하다. 다윈의 기능의 변화란 말은 생물의 몸에 생기는 발명의 대부분은 기존 형질의 기능이 바뀜으로써 생긴다는 것을 설명한다. 우리는 이 말을 발판삼아 기관, 단백질, 나아가 DNA의 기원까지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물고기나 공룡, 사람의 몸은 수정된 순간에 완전한 형태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의 몸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달되는 레시피를 바탕으로 세대마다 새롭게 만들어진다. 발명의 씨앗은 레시피 안에 들어있다. 또한 다윈이 예견했듯 레시피가 어떤 조건에서 생겨났다가 다른 조건하에서 전용되는 방법으로도 발명이 탄생할 수 있다.

 

카를 에른스트 폰 베어 이야기를 하자. 그의 연구에 힘입어 이미 알려진 모든 동물 종의 모든 기관에 숨어 있는 보편적 연결고리가 드러났다. 깊은 바다에 사는 아귀목이든 하늘로 솟구치는 앨버트로스든 심장은 중배엽의 세포들에서 생기고 뇌와 척수는 외배엽에서 생기며 장과 위와 기타 소화기관은 내배엽에서 발생한다. 이 법칙은 지극히 보편적이어서 지구상에 서식하는 어떤 동물의 어떤 기관을 고르든 그것이 어느 배엽에서 발생했는지 알 수 있다.

 

종들의 초기 배아가 서로 비슷하다는 폰 베어의 발견에 다윈도 주목했다. 물고기, 개구리, 사람 등 다양한 동물이 공통의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동물들이 공통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양한 종이 조상을 공유한다는 증거로 그 동물들이 배아 발생과정에서 공통 단계를 거쳤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게 있을까?

 

저자는 에른스트 헤켈 이야기를 한다. 찰스 다윈의 저서를 읽고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는 그는 개체 발생(배아 발생)은 계통 발생(진화사)을 반복한다는 말을 남겼다. 가령 쥐의 배아는 벌레, 어류, 양서류, 파충류의 모습을 차례로 거친다는 것이다. 저자는 헤켈이 주장하듯 동물의 배아에서 생명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면 생명의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 굳이 중간형 화석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배아 발생의 어느 단계에도 조상의 모습은 없었다. 인간의 배아는 폰 베어의 지적처럼 몇 가지 점에서 물고기 배아와 비슷했지만 다리를 가진 물고기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든 인간의 조상처럼 보이는 단계는 발생과정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조류 배아가 발생하는 과정에도 시조새처럼 보이는 단계는 없었다. 헤켈의 가설은 틀렸지만 수많은 학자가 그의 가설에 영향을 받아 연구를 시작했다. 게다가 그 가설은 과학연구의 주제로 채택되지 않은 지가 벌써 100년이 넘었는데도 일각에 그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다.

 

1820년부터 1930년까지는 생물학에서 이른바 빅 아이디어의 시대였다. 폰 베어, 에른스트 헤켈, 찰스 다윈, 가스탱 등 수많은 연구자가 동물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법칙을 찾기 위해 동물의 몸 구조, 화석, 배아를 조사했다. 동시에 생명의 다양성을 가져온 메커니즘도 밝히고 있었다.

 

저자가 보는 게놈은 음악과 닮은 것이다. 같은 소재를 여러 방식으로 반복함으로써 무수히 다양한 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이 작곡가였다면 역대 최고의 저작권 위반자로 등극할 것이다. DNA의 일부분부터 유전자와 단백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원본의 변형된 사본이다.

 

바바라 맥클린톡 이야기도 흥미롭다. 맥크린톡은 1983년 점핑유전자 발견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인간 유전체의 40% 이상은 고대 바이러스 유전자의 흔적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 가운데 인간 유전체 속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점핑유전자’(jumping gene) 또는 ‘트랜스포존’이란 것들이 존재한다.

 

점핑유전자는 유전체 내에서 새로운 돌연변이를 만들기 때문에 암이나 유전 질환을 유발할 수 있고 뚜렷한 기능이 알려지지 않아 유전체의 기생충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 진화를 이끄는 동력이기도 하다. 저자는 게놈은 지루하고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게놈은 활력으로 출렁이고 있다. 유전자가 중복될 수도 있고 기능 전체가 중복될 수도 있다. 유전자는 자신의 삶을 만들며 게놈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게놈에는 두 종류의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라. 하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단백질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오직 돌아다니며 자신의 사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사본을 만드는 유전자가 게놈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우리 게놈의 3분의 2가 LINE1과 ALU 같은 반복서열로 되어 있는 한 가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복 서열을 억제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게놈을 점령해버릴 것이다. 이런 기생 인자들을 멈출 수 있는 순간은 이들이 완전히 통제 불능이 되어 숙주가 죽고 이에 따라 그들도 사라질 때다. 개체 내의 점핑유전자가 통제되지 않고 폭주하면 그 개체는 죽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도 없다. 이런 이기적 유전자와 숙주는 항상 긴장관계에 있고 심지어는 내전 상태다.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의 사본을 만드는 것만이 목적인 반면 숙주 게놈은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유전자(gene)와 세포핵 속의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인 게놈은 유전 물질인 디옥시리보 핵산(DNA)의 집합체를 뜻한다. 생명현상을 결정짓기 때문에 흔히 '생물의 설계도' 또는 '생명의 책'이라 불린다.

 

점핑 유전자는 자신의 사본을 만들어 게놈의 여기저기에 끼워 넣는다. 맥클린톡은 점핑 유전자를 훼방꾼으로 보았다. 그것이 점프해 다른 유전자에 끼어들면 유전자의 기능이 망가져 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동료 데이비드 린치는 점핑유전자에서 다른 역할을 찾아냈다. 점핑 유전자는 궁극의 이기적 분자다.

 

사본을 만들어 확산하며 게놈 안에서 증식해 나간다. 린치는 이런 점핑 유전자가 때로 새로운 일을 하는 유용한 돌연변이를 실어나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게놈 안에서는 점핑 유전자와 나머지 DNA가 예정된 내전을 벌이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와 이를 제어하려는 힘 사이에 언제나 긴장이 감돈다. 최근 들어 DNA가 점핑유전자를 제어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저자는 우리 존재를 포함해 지금의 자연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어난 우발적 사건들의 산물이라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견해와 다른 내용을 말한다 .최신 과학과 거의 1세기의 연구는 우발적 사건의 내용을 바꿔 생명의 테이프를 재생한다 해도 몇 가지 결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유류의 진화에 대해 보자. 호주의 유대류 동물들은 나머지 세계와 격리된 상태로 1억년 이상 진화하며 여러 형태를 가진 다양한 종들을 탄생시켰다. 
 

그 결과는 확실히 무작위적이지 않다. 유대류 날다람쥐, 유대류 두더지, 유대류 고양이, 심지어 유대류 우드척 다람쥐까지 있다. 게다가 이 예들은 현생종만 말한 것이다. 지금은 멸종 했지만 과거에는 유대류 사자, 늑대, 심지어 검치호랑이까지 있었다. 격리된 대륙에서의 유대류 진화는 대개 세계 다른 지역에서의 포유류 진화와 비슷한 경로를 따랐다.

 

조너선 로소스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각 섬의 도마뱀들은 같은 섬에 사는 다른 도마뱀들과 가장 가까웠다. 섬마다 유전적으로 구별되는 도마뱀 개체군이 살고 도마뱀의 정착은 섬마다 따로 일어났다. 표류하던 도마뱀들이 언젠가 각 섬에 상륙했고 각 섬의 자손들이 새로운 서식지의 여러 환경 조건에 적응한 것이다.

 

각 섬에서 도마뱀들이 지표, 나무줄기, 나뭇가지, 수관의 생활에 적응해 나간 과정은 다른 섬들과는 독입적으로 진행된 진하 실험이었던 셈이다. 각각의 섬이 별개의 실험이었다면 진화는 같은 결과를 반복적으로 생산한 것이다. 생명사의 테이프를 각 섬에서 재생했다 해도 진화는 같은 방식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이런 자연의 실험은 생명사가 우발적 사건들이 난무하는 불확실한 도박판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주사위가 어떤 눈이 나올지는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었다. 유전자와 발생이 몸을 만드는 방식, 환경의 물리적 제약, 그리고 진화사에 의해 특정한 눈이 나오기 쉽게 주사위가 설계되어 있었다. 각 세대의 생물들은 기관과 몸을 만드는 레시피를 물려받는다. 이런 유전 정보는 미래를 말해준다. 변화의 특정 경로가 다른 경로에 비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의 몸과 유전자 내부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린 마굴리스는 동식물과 균류의 몸을 이루는 세포에 주목했다. 이런 세포는 박테리아 세포에서는 볼 수 없는 복잡성을 지니고 있다. 각 세포에는 핵이 있고 핵 안에는 게놈이 있다. 핵 주위에서는 많은 작은 기관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세포소기관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식물 세포에는 엽록체가 있고 그 안에서 엽록소가 태양에너지를 이용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광합성 반응을 수행한다. 마찬가지로 동물 세포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어서 산소와 당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마굴리스는 이런 세포소기관들이 세포 안의 작은 세포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각은 자체 막으로 둘러싸여 세포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되어 있다.

 

세포소기관은 세포내에서 둘로 쪼개지는 방법 즉 출아를 통해 증식한다. 먼저 길쭉하게 늘어났다가 덤벨처럼 가운데 부분이 좁아진다. 그런 다음 양쪽이 분리되어 두 개체가 된다. 세포소기관은 심지어 세포핵의 게놈과는 별도로 자체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 세포소기관의 게놈은 핵의 게놈과는 매우 다르다.

 

핵 안에서는 DNA 가닥이 돌돌 말려 있지만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에서는 DNA 가닥의 끝과 끝이 맞물려 단순한 고리를 이룬다. 자체 막과 DNA를 가지고 스스로 증식하는 이런 세포소기관들을 보며 마굴리스는 뭔가를 떠올렸다. 이런 특징을 전에 단세포 박테리아와 남조류에서 본 적이 있었다. 박테리아와 남조류도 출아로 증식하고 비슷한 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엽록체나 미토콘드리아의 게놈과 매우 비슷한 모양의 게놈을 가지고 있다.

 

동물과 식물의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세포소기관들은 아무리 봐도 이들이 속한 세포의 핵보다 박테리아나 남조류와 훨씬 더 비슷해 보였다. 마굴리스는 진화사에 대한 과감한 새 이론을 제창했다. 엽록체는 원래 자유 생활을 하던 남조류로 다른 세포에 포섭되어 그 세포를 위해 에너지를 공급하는 대사 일꾼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토콘드리아도 원래 자유 생활을 하는 박테리아였으나 또 다른 세포에 합병되어 에너지를 생산하게 되었다. 두 사람과 같이 별개의 생물이 융합해 더 복잡한 새로운 개체를 만들었다는 마굴리스의 생각은 과감한 것이었다. 모든 복잡한 세포는 두 가지 계통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세포핵 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한때 자유 생활을 했던 남조류와 박테리아 조상들의 계통이다.

 

자신의 이론이 입증된 후 마굴리스는 "나는 내 가설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지식의 공백을 희망, 기대, 두려움이 조금씩 버무려진 우리 자신의 선입관으로 매우는 경향이 있다. 우리 뇌는 점처럼 흩어져 있는 과거 사건들을 연결해 한 변화가 다음 변화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잃어버린 고리라는 말을 우리는 수도 없이 들었다. 이 말은 진화가 마치 하나의 고리가 다음 고리로 거침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큰 사실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우리가 자연의 다양성을 조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들도 수백 년 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십 년 전에 전임자들이 고안한 것을 가져와 수정한 것이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 알갱이에서 우주를, 한 송이 야생화에서 천국을 본다고 말했다. 보는 방법을 알면 모든 생물의 기관, 세포, DNA 안에서 수십 년의 역사를 볼 수 있고 나아가 우리가 지구상에 나머지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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