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논어 한마디 - 거친 물결에 흔들리는 삶을 잡아줄 공자의 명쾌한 해답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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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공자가 자신이 겪는 고통과 근심을 겪었다는 데에서 위안을 받았다. 공자는 도(道)와 먹을 것 사이에서, 도에 대한 걱정과 가난에 대한 걱정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지침이 된 인물이다. 저자는 ‘논어’를 읽고 근심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를 공자의 글에 비추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술처럼 달콤한 사이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구절이다. 청나라 대학사 장정옥은 일 중독에 빠진 황제 옹정제를 보필했다. 그들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가 지켜졌다. 장정옥은 황제가 자신을 찾지 않으면 굳이 찾아가지 않았고 옹정제는 장정옥을 공적인 일에만 불렀고 사소한 일로 귀찮게 하지 않았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백하고 소인의 사귐은 술처럼 달콤하다고 한다. 물처럼 담백한 사귐이 필요하다. 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인자요산 지자요수를 보자.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말로 알려진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르게 본다. 어진 사람의 즐거움은 산과 같고 지혜로운 사람의 즐거움은 물과 같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사실 어진 사람은 왜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왜 물을 좋아하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다. 저자는 인자요, 산.. 지자요, 수라고 읽는다. 어짊을 추구하는 사람은 내면의 덕을 쌓기에 산처럼 중후하고 포용적이며 관대하고, 지혜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배움을 좋아하며 즐기기 때문에 흐르는 물처럼 활달하고 역동적이다. 어진 사람은 안정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을 좋아한다. 어진 사람은 오랜 시간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다양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어짊과 지혜로움은 함께 추구되어야 할 덕목이다. 산과 물이 어우러져야 아름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상반되는 두 어구 또는 사상을 내세워 주제를 강조하는 대조법을 많이 사용했다. 어짊과 지혜는 함께 추구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군자와 소인은 어떤가? 저자는 군자와 소인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군자와 소인은 완전히 다른 두 유형의 사람이 아니며 단순히 누구는 군자이고 누구는 소인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군자적 면모와 소인적 면모가 두루 존재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에게 소인적 면모가 더 많을 것이다. 공자는 방탕하게 행동하지도 않고 자신을 너무 구속하지도 않는 평온한 중용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중용은 논란이 있는 개념이다. 상론할 수 없고 다만 평온한 경지는 뿌리를 뽑는, 끝까지 하는, 용감한 태도가 없이는 이루기 어려운 덕목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다. 군자는 염옹은 남면(南面)을 할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군주가 될 사람이라는 말이다. 반면 자공은 호련(瑚璉)이라 평했다. 호련이란 기장과 피를 담아 종묘에 바치는 제기(祭器)다.

 

이는 자공이 고귀한 인물이지만 아주 비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의미다. 공자는 자신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또는 지혜롭게 말했다. 저자가 든 ‘나를 살리는 논어 한 마디’ 가운데 행불유경(行不由徑)을 빼놓을 수 없다.

 

지름길이 주는 욕망의 유혹에 발을 딛지 말라는 말이다. 군자대로행과 상응하는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과도 통한다. 저자의 책은 인자요산 지자요수가 아니라 인자요, 산, 지자요, 수라는 해석에서 가장 빛난다. 의문이 풀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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