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진의 ‘제왕의 책’에 의하면 세종은 경연(經筵)에서 ‘자치통감’을 읽으려 했다. 그러나 분량이 총 249권에 이르기에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힌 세종이 대안으로 택한 책이 ‘통감강목‘이다. 태종은 책을 너무 읽어 건강을 해친 아들(충녕)을 위해 책을 치우게 했는데 단 한 권 구소수간(歐蘇手簡)은 곁에 두었다고 한다. 숨겨둔 것이다.

 

구소수간은 구양수(歐陽修)와 소동파(蘇東坡)의 편지글을 엮은 책이다. 구양수와 소동파가 직접 주고 받은 편지가 아니라 각기 다른 사람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것이다. 소동파가 구양수가 대과 시험위원장을 맡은 시험에 응시했다.

 

이름을 가리고 채점하는 가운데 탁월한 답안지를 보고 소동파의 것으로 짐작했다가 제자인 증공의 것인가 싶어 제자에게 최고점을 주면 문제가 될 것 같아 최고점을 주지 않았으나 알고 보니 소동파의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구양수, 소동파 모두 당송팔대가에 속한다.

 

“화려하고 난삽한 이전 문장의 구습을 질박하고 명쾌한 사상과 작법으로 개혁”했다는 평을 듣는 사람들이다. 질박(質朴)과 명쾌(明快)란 말이 눈에 띈다. 간결하다는 의미도 되리라.

 

“..꽃과 나무와 마음을 변화시키는 봄볕에 하릴없이 연편누독(連篇累牘)만 더합니다..”(조용미 시인의 ’봄의 묵서’ 중에서)란 시가 생각난다. 연편누독이란 쓸데 없이 긴 문장을 말한다. 봄볕에 하릴없이 말이 많아지듯 시인은 글이 길어진다고 자신을 탓한다. 하릴없이 걷고 싶은 봄볕 좋은 날들이 계속되다가 오랜만에 비가 내리는 주일(主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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