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 현대인의 삶으로 풀어낸 공자의 지혜와 처세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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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고 나서 근심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저자의 책이다. 저자는 ‘논어’의 한 문장이라도 머릿 속에 각인되도록 주문처럼 외우면 난제를 만났을 때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자의 즐거움의 핵심은 즐거움에 있다. 즐거움은 외부를 향하지 않는다. 즐겁지 아니한가의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생긴 즐거움이다.

 

이 책을 통해 두 한자를 눈여겨 본다. 선(鮮)과 목(木)이다. 선은 드물다는 의미, 목은 꾸밈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박목월(朴木月) 시인의 이름이 문득 생각난다. 순박하고(朴), 꾸밈 없고(木), 해에 비해 온건한(穩) 이름이다. 화(華), 교(巧) 등과 거리가 있는 이름이다. 시인은 ‘나그네’를 청록집에 수록된 자신의 작품들의 가장 바탕이 되는 작품으로 설명했다.

 

묵화(墨畵)에서 점 하나를 소중히 하듯 말 하나를 아꼈다고 했다. 선(鮮)은 교언영색 선의인에 나온다. 말을 교묘하게 하고 아첨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진 사람이 적다는 의미다. 공자는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사귀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진 사람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저자는 공자의 이 말을 실천하려면 내면의 수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현역색(賢賢易色)은 외면의 집착을 버리고 내면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저자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사귀지 말라는 공자의 말을, 자신을 계속 발전시키려면 의식적으로 인품과 지조, 교양을 두루 갖춘 사람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라 말한다.

 

선(鮮)은 생선을 의미한다. 노자는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라고 말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여러 마리의 생선을 그릇에 넣고 삶을 때 그것들을 자꾸 뒤적거리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나라를 다스릴 때 작은 일에까지 간섭하면 나라가 흔들릴 수 있음을 말한다.

 

순자는 임금이 요점을 파악하는 것을 좋아하면 모든 일이 상세하게 처리되고 자질구레한 것까지 파악하는 것을 좋아하면 모든 일이 황폐해진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공자가 나에게 몇 년의 시간이 허락되어 오십에 주역을 배울 수 있다면 큰 허물이 없게 될 것이라 말했음을 상기시킨다. 사십 불혹이니 사십에 인생을 통달했는데 굳이 주역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한다.

 

즉 사십 불혹이란 인생을 통달한 것이 아니라 물질과 이익에 미혹되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것이다.(136 페이지) 누군가가 공자에게 자신은 스승님처럼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없고 지혜로울 수도 없으니 스승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공자는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면(온고이지신)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스승의 말을 듣고 깨닫고 익히고 응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더해야 한다. 온고이지신의 온(溫)은 작은 불로 천천히 익힌다는 의미다. 저자는 논어를 여러 번 읽고 나서야 군자와 소인이 완전히 다른 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소인과 군자라는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하니 수련과 고찰을 통해 소인의 모습을 줄이고 군자다운 면모를 키워나가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179 페이지)

 

저자는 조화와 결탁을 구분한다. 조화는 완전하고 독립적인 인격을 전제로 형성되는 평등한 관계이고 결탁은 상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균형을 잃은 관계를 말한다.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는 유명한 문장을 만난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의미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2천여년전 공자가 고민했던 문제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189 페이지) 이 문장을 통해 불안할 때 공자를 읽(어 도움을 받)는다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공자는 공호이단(攻乎異端) 사해야이(斯害也已)를 다른 생각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해석한다. 다른 학파를 모두 없애고 오로지 유교만 숭상한 것은 한대(漢代) 이후다. 공자는 다른 학파를 이단이라 정의하지 않았다.(191 페이지)

 

저자는 어떤 사람들은 일부 책에 있는 내용들이 거짓이고 탁상공론일뿐이며 지식은 직접 탐색해서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책을 읽으며 책 속에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구나, 이 사실을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라 말한다. 무지함을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를 망가뜨리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자만이다. 모든 걸 안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태도다.

 

공자는 많이 듣고 의심되는 부분은 빼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해 많이 듣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내지 말고 한쪽에 제쳐두라는 의미다. 저자는 스스로 권위를 낮추는 것과 다른 사람에 의해 권위가 낮아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스스로 권위를 낮추는 리더는 개인의 체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206 페이지)

 

사람을 선발하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 들 거(擧)와 뽑을 발(拔)이다. 전자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시선으로 선발하는 것이고 후자는 위에서 아래를 냬려다보며 선발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직원들은 선택받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높은 사람의 환심을 얻으려고만 하는 등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공자는 반드시 말은 신용 있게 하고 행동은 과단성 있게 하라고 가르쳤다. 공자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智), 인(仁), 용(勇)을 갖추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모른다. 저자는 성선설을 인간이 착하다는 뜻이기보다 선으로 향하는 힘이 있다는 뜻이라는 견해를 소개한다.

 

어짊의 반대는 둔함이다. 어짊은 공감하는 것이다. 공자는 중국에서 순장을 가장 먼저 반대한 인물이다. 예의 본질은 내면에 있으니 굳이 순장할 필요는 없다는 뜻에 따른 주장이었다. 공자는 자신은 싸우지 않고 끊임없이 가치를 창조할뿐이라 말했다. 공자는 군자는 경쟁하지 않지만 반드시 활쏘기에서는 경쟁한다고 말했다. 활쏘기는 멋진 운동, 예의 운동이다.

 

공자는 진취한 사람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 애쓴 사람이다. 진취란 군자다운 경쟁이다. 진취란 승패를 떠나 새로운 가치를 성취하는 것이다. 예의 근본은 어짊이다. 공자는 불만스런 상황에서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반복했다. 저자는 혹문체지설(或問之說)을 호모사피엔스를 잇는 제사 지내는 인간으로 설명한다. 체(禘)는 큰 제사 체자로 주나라에서 천자만이 지내는 제사를 의미한다.

 

불교에 평범한 사람은 결과를 두려워 하고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 한다는 말이 있다. 원인이 나쁘면 결과가 나쁠 수밖에 없다. 공자는 아끼는 제자 안회가 죽자 울다가 통곡에 이르렀다. 누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말에 이 사람을 위해 슬퍼하지 않는다면 누굴 위해 슬퍼하겠는가?란 말을 했다.

 

문헌(文獻)의 문은 역사 서적이나 과거의 문장, 헌은 구술이나 기억을 말한다. 자신을 키운 것은 팔할이 공자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논어를 심리학, 물리학, 사회학, 경영학 등 현대의 학문들과 연결해 책을 썼다. 그 책이 바로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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