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과 만나다 - 천상과 지상을 비추는 괴물 비아 만나다 시리즈
티머시 빌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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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본 환상을 기록한 책이다. 이 경전에 나오는 666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어도 잘 아는 숫자다. 666은 공포증을 유발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숫자다. 요한에 의하면 짐승이 모든 사람들의 이마에 낙인을 받게 한 뒤 이 사람들 외에는 물건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했다. 사람들은 왜 666을 두려워할까?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한 글자도 읽지 않고도 소설 속 괴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 듯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을 한 글자도 읽지 않고 계시록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는 점이다. 물론 잘못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이 계시록에 대해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

 

저자 티머시 빌이 빈틈없이 파악하기도 어렵고 손에서 놓아버리기도 어렵다고 정의한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령 에개해의 섬 파트모스에서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다. 파트모스는 요한의 유배지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를 증언한 탓에 파트모스 섬에 갇힌 요한에 따르면 세상이 절멸한 자리에 하나님이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을 세울 것이다.

 

저자는 계시록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양한 문화가 낳은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산출해내고 끝없이 다시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29 페이지) 요한은 주님의 날에 성령 감동을 받고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이 음성은 요한에게 자신이 보는 것을 두루마리로 기록해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에 보내라 했다.

 

계시록은 22장(마지막 장) 20절에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란 말을 전한다. 오늘날 대다수 연구자는 계시록 저자 요한이 사도 요한 또는 복음서 저자 요한과 다른 인물이라는 견해를 갖는다.(79 페이지)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손으로 기록한 두루마리와 파피루스 또는 동물 가죽으로 만든 작은 코덱스(손으로 제본한 책)를 베껴 적고 이를 공동체라는 연결망 안에서 공유했으며 예배나 학습을 위해 가정집에 모일 때 소리내어 함께 읽었다.

 

커다란 코덱스라는 새로운 매체와 그리스도교 왕국이라는 새로운 제국 종교는 선을 맞잡고 정경을 확정했다.(170 페이지) 요한계시록은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상호본문성이라고 부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86 페이지) 저자인 요한도 단일하고 통합된 전체로서의 계시록의 저자이자 원천이라기보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 온갖 목소리들과 본문들이 교차하는 장소다. 요한은 여러 상상을 했지만 무시무시하고 악마 같은 제국 세력의 절정, 그리스도와 그의 참된 추종자들에게 궁극의 적이라 할 로마가 언젠가 그리스도교의 동의어가 될 정도로 그리스도교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89 페이지)

 

로마 그리스도교 왕국의 제도화는 우연히 동시에 발생한 일들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제국과 코덱스가 만나 정경이 나온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계시록의 생애에서 몹시도 위태로운 순간에 등장한 인물이다. 그는 성에 대한 불신, 원죄, 무로부터의 창조, 오직 은총에 의한 구원, 예정론 같은 교리의 틀을 만들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계시록이 근본적으로 다른 역사적 각본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계시록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적어도 몇 세기는 연기(延期)하고 있다.(103 페이지) 힐데가르트는 '스키비아스'라는 작품을 썼다. 그의 첫 저작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인 '스키비아스'는 스물 여섯 개의 종말에 대한 환상을 열거한 책이다. 스키토 비아스 도미니의 줄임말인 스키비아스는 주님의 길을 알라는 뜻이다.

 

힐데가르트는 점토를 섞어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드는 사람처럼 계시록을 다루었다.(139 페이지) 점토 이야기는 예레미야 18장을 참고하면 좋다. 저자는 말한다. 성경 역사는 창조부터 완성까지 시간에 따라 나아가는(통시적인) 세계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는 선형(線形)의 이야기이고 지리 정보 시스템처럼 여러 겹이 있는 지도 같은 것이어서 이 지도를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반영하는 역사의 공간적인(공시적인) 지형을 밝히고 해독하는 도구가 된다.

 

대우주이자 바깥쪽 바퀴인 보편적 역사의 내부에 있는 소우주인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뜻 전체를 드러내 준다. 계시록은 보편적 역사의 색인이자 해석의 열쇠다.(150 페이지) 두 명의 베네딕트회 수도사였던 빙엔의 힐데가르트(1098 ? 1179)와 피오레의 조아키노(1135 ? 1202)는 동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알지 못했는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많다.(119 페이지) 조아키노는 붉은 용 그림을 그렸다. 이 용은 사탄의 상징이지만 과거, 현재, 미래에 교회에 주어지는 시험과 시련의 역사 전체를 상징하기도 한다.(154 페이지)

 

마곡과 함께 계시록의 마지막 전투에서 하나님에게 패하는 악마의 군대 곡은 조아키노의 그림에서 또 다른 적그리스도다. 개신교 종교개혁은 신학의 혁명 못지 않게 매체의 혁명이기도 했다. 여러 측면에서 개신교 종교개혁은 성서 문해력을 끌어올리려는 운동이었고 만인사제직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성경을 가능한 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려 애썼다.(171 페이지)

 

이와 동시에 인쇄 문화는 성서와 여타 책을 소장 가치 있는 필사본에서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빠르게 변모시켰다. 계시록은 수많은 세월에 걸쳐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기계로 이용되었으며 종교개혁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188 페이지) 개신교에서는 계시록을 활용해 로마 가톨릭을 괴물로 만들었고 로마 가톨릭은 계시록을 활용해 개신교를 괴물로 만들었다. 루터는 해석되지 않은 환상과 심상만 제시하며 모호하다는 이유로 계시록을 혐오했다. 물론 루터의 바람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을 읽기 위해 성서의 다른 책들을 건너뛰었다.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에 열광했다. 참 이해하기 어렵다. 열광할 것이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세계에 대한 내용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이면 되지 않는가? 열광한 사람들은 계시록을 감상용으로 즐긴 것이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17세기 초에 이르러 유럽인들은 인도 종교를 계시록의 사악한 괴물을 숭배하는 종교로 묘사했다.(205 페이지)

 

다른 종교를 향했던 서구 그리스도교의 괴물 만들기는 지난 세기 서구로 귀환해 뿌리를 내렸다. 1960년대 이래 미국 곳곳에서 그리스도교 우파가 부상한 현상은 여러모로 종교의 다양성이 증가한 것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우파의 가장 분명한 강령은 낙태 반대와 동성애 반대다. 하지만 이 운동에 속한 구성원들이 초창기부터 가장 열을 올렸던 일은 비그리스도교 특히 불교와 힌두교를 기괴한 악마 숭배 종교로 매도하는 것이었다.

 

나와 세계, 나와 다른 누구 사이에 계시록을 놓으면 그 차이는 악마화한다. 내가 속한 세계와 다른 세계는 악마의 소굴이 되고 나 혹은 우리와 다른 누군가는 악마에 사로잡힌 존재가 되며 나의 하나님과 다른 신은 악마가 된다.(215 페이지) 종말론적 괴물 만들기 과정은 괴물이 되는 대상들 즉 방문자, 이민자, 이방인, 사회 주변부에 있는 구성원들이 현실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게 만든다. 괴물이 된 이들의 인간성은 부인되고 이들을 향한 폭력은 정당화된다. 더 나아가 이들을 향한 폭력은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의 우주적 대결의 일부로 추켜올려져 칭송받기까지 한다.(216 페이지)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복잡한 대칭이 자아내는 효과 중 하나는 그리스도교의 서로 다른 두 시간 개념을 통합하는 것이라 말했다. 두 시간 개념이란 직선적 시간과 순환적 시간을 말한다.(233 페이지) 저자는 휴거(携擧) 이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계시록에 휴거 이론이 담겨 있으리라고 지레짐작하지만 계시록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서술되지 않았다. 휴거 이론은 이런저런 성서 구절을 꿰어맞춘, 이질적인 부분들을 하나로 엮은 또 하나의 괴물 종말론이다.

 

저자는 계시록은 좁은 의미에서의 본문도 아니며 계속 확장하고 수축하는 다중매체 집합체라 말한다.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좌파 진영에 속한 인물들도 종말론 각본에 긷들여져 있기는 매한가지다. 이들은 계시록의 언어로 우파의 지도자들을 비난하면서 사람을 기만하고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사악한 힘들 그들에게 투사하고 가난한 이들과 억압당한 이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부를 추구하는 그들의 기만과 탐욕을 비판한다.(274 페이지) 종말론 각본은 그리스도교 문화 못지않게 탈그리스도교, 반그리스도교 문화에도 깊게 스며들어 있다.(275 페이지)

 

일부 그리스도교인 비평가들이 악마 숭배자라고 매도한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블랙 사바스조차 종말론 각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망상이 무너지고 결코 창조주에게 견줄 수 없는 육체적 취약성과 한계에 직면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종말론 각본을 찾는다. 우리는 우리가 유한하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대로 살아가기보다는 종말론을 불러낸다. 우리는 우리의 최후를 세계에 투사한다. 그리고는 세계는 엉망진창이라고, 행로를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이렇게 세계가 엉망진창이 된 이유는 궁극적 악을 추종하는 이들 때문이라고, 유일한 희망은 하느님이 이 엉망진창이 된 우리 땅, 세계를 대체할 새 육체, 새 하늘, 새 땅을 주셔서 우리를 구해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279 페이지)

 

계시록은 탄생부터 기괴했다. 무로부터 혹은 흙으로부터 창조되지 않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짜깁기된 계시록은 유대교 경전과 여러 신화들의 다양한 조각과 파편들로 만들어졌고 우리에게는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는 초기 예수 운동의 어두운 한구석에서 생명을 얻었다.(281, 28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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