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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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는 지금의 경남 합천이다. 이순신의 어머니가 초계 변씨이다. 무인 변수림의 딸 초계 변씨다. 남편 즉 이순신의 아버지는 이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순신의 어머니, 작은 어머니, 할머니가 모두 초계 변씨라는 사실이다. 이순신은 어머니를 시종 천지(天只) 즉 하늘이라 표현했다. 이순신의 무공(武功)이야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그의 어머니 초계 변씨의 혁혁함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는 이순신의 어머니에 초점을 두고 쓴 책이다. 부제는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삼천지교(三遷之敎)'다. 삼천이란 건천동에서 아산으로, 아산에서 여수로의 이사를 이르는 말이다.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난 이순신이 아산으로 이사한 것은 할아버지(초계 변씨의 시아버지)가 중종의 국상 당시 혼인 잔치를 해 녹안(錄案; 관리의 범죄 사실을 기록한 장부)에 오름에 따라 자식들의 장래를 염려한 어머니에 의해서다.

 

아산은 이순신 어머니의 친정이었다. 이 시절 이순신은 문과에서 무과로 학업을 바꾸어 급제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을 정신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아산에서 여수로 이사했다. 과연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는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순신은 형 요신으로 인해 동학(東學)을 통해 유성룡을 만났다. 유성룡은 이순신을 정읍 현감, 전라좌수사에 적극 천거했다.

 

이순신의 할아버지 이백록이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뜻을 같이하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말이 있지만 이백복(이백록의 형)과 혼동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가 보인 주도적 역할은 당시만 해도 여성의 지위나 발언권이 높았던 시대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순신을 중매 선 사람이 영의정인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이었다.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에게 사약을 가져다 준 이세좌의 손자였다. 연산군이 내린 처벌로 집안에 남자가 없을 정도였으나 유모가 데리고 달아난 덕에 이윤경, 이준경 형제는 살았다. 이준경은 하성군을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하성군은 선조다.) 이준경은 붕당의 출현을 이야기했고 왜적의 침입도 예언했다.

 

이준경이 중매를 선 것은 그가 이순신의 조부, 처조부와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동기였기 때문이리라. 이순신은 무과 도전 10년만에 급제했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에 의해 주도된 아산 이주는 가문에게는 경제적 해결책이 되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이 찾아오자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고 당부하며 이별을 조금도 탄식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어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닮았다. 모자 모두 자주, 자립을 원칙으로 여겼고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여간해서는 흔들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냉정할 정도로 침착한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이런 인연, 저런 연줄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지만 절제했다. 모자는 애틋한 정을 주고 받았다. 어머니는 78세에 여수행을 결정했다. 아들 이순신이 49세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때다. 이순신은 탐후(探候船)이 오지 않자 '어머니의 안부를 알 수 없다, 걱정이 되고 눈물이 난다.'고 썼다.

 

이순신은 1596년 새해의 결심을 대학(大學)의 구절을 빌어 썼는데 부윤옥(富潤屋)이란 구절은 뺐다. 덕에만 관심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순신은 예민한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가토 기요마사가 꾸민 간계에 걸렸다. 간계임을 알아차리고 기다렸지만 조정에서 어리석게도 사태를 바로 보지 못하고 이순신을 죽이라고 난리를 쳤다. 이순신을 비호해줄 유성룡은 지방 순시에 나가 있었다. 대신들이 하나 같이 이순신의 죄를 묻는 상소를 올리자 이순신을 질투(104 페이지)하던 선조는 못 이기는 척 이순신의 파직을 명했다.

 

여기서 통제영에 대해 말하자. 통제영은 조정으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는 자립, 자영 체제였다. 수만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데다가 명나라 장수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작은 정부였다. 이순신은 통제영의 원수(元帥)였다. 선조로서는 큰 위협을 느꼈을 수 있었다. 이순신은 순순히 체포되었다. 이순신의 직속 상사인 이원익은 단도직입적으로 왜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뒤 바로 이순신이라 답하며 '지금 그를 죽여 무엇을 얻으시겠습니까? 부디 간언컨대 순신을 살려 전쟁으로 보낸 공을 세우게 하옵소서, 공을 세워 나라도 구하고 죄도 갚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이순신은 1597년 2월 한산도에서 체포되어 3월 4일 서울 전옥서(典獄署)에 수감되었다. 판중추부사 정탁은 처음에는 순신이 잘못한 줄 알았으나 진상을 들은 뒤 목숨을 걸고 탄원했다. 이에 선조는 특별사면령을 내렸다. 정탁의 상소는 유성룡의 우회적 상소라는 말도 있다. 아들의 하옥 소식을 들은 83세의 어머니는 내 관을 짜서 배에 실라는 말로 아들을 보려 가려는 자신의 건강을 우려해 반대하는 사람들을 물리쳤다. 아들이 풀려났지만 어머니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

 

저자는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의지처라는 점에서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었던 이순신도 주요 해전에서 대승의 에너지를 어머니로부터 공급받았을 것이라 짐작한다고 말한다.(230 페이지) 사료를 집요하게 파헤치지 않으면 세세한 것들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라 말하는(107 페이지) 저자의 집념이 빛나는 책이다. 흥미롭게 읽었다.

 

선조의 치졸함은 역시 안타깝게 읽혔다. 이순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서인지 관련이 있지만 직접 자료가 될 수 없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다소 많지 않나 싶다. 1944년 중종 국상일(61 페이지), 이 충무공이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 한산정(閑山停)(110 페이지).. 신라시대의 지방군 부대를 이르는 한산정(漢山停)을 보고 잘못 쓴 것이 아닌지?(停; 신라의 군영) 등의 오류가 보인다.(한산정은 閑山亭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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