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깊어지는 결정적 순간에는 언제나 액체의 교환이 있다(시집 ‘뜻밖의 바닐라’ 수록 시인의 말 참고)는 말을 한 시인이 있다. 시인에 의하면 교환되는 액체는 차(茶), 술 등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같이 흘리는 눈물이다. 우당(友堂)은 두주(斗酒) 불사(不辭)하는 원세개에게 술은 차를 대신할 수 없지만 차는 술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또 하나의 액체의 교환을 말할 수 있겠다. 관계가 깊어지는 것과 무관한 교환이고 일방적 전가(轉嫁)라 할 수 있다. 음식을 먹을 때 튀는 김치 국물이 그것이다. 얼룩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얼룩은 액체 따위가 묻거나 스며들어서 더러워진 자국을 의미한다. 하지만 얼룩소나 얼룩말에 길들여진 탓인지 시뻘건 색을 표현하는 것으로는 쓸 수 없을 것만 같기도 하다.
어떻든 이 흠은 처음에 시뻘건 색을 띠었다. 마음 한켠에 상처가 난 듯 했다. 하지만 한참 지나니 얼룩은 종이색과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이것을 탈색(脫色)이라 해아 할 듯 하다. 바랬기 때문이다. 황동규 시인이나 나희덕 시인의 어법을 따르면 이를 육탈(肉脫)이라 할 수도 있겠다. 주의할 것이 있다. 탈색(奪色)이라는 말과의 구별이다.
뛰어난 물건이 다른 물건을 압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압권(壓卷)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여러 작품 또는 답 가운데 가장 잘 지은 것을 의미하는 압권의 주인공 즉 과거 급제자는 임금을 알현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를 관광(觀光)이라 했다. 지금 관광은 그런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급제(及第)는 하지 못하고 여행이나 하는 (관광이란 말이 속화된 것과 무관하게 여행이란 말을 좋아하는) 나는 내일 서울에 간다. 1년에 170회나 간 적이 있는 곳이지만 변함없이 배워야 할 텍스트 같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