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질문하는 뼈 한 조각 - 인류의 시초가 남긴 흔적을 뒤쫓는 고인류학
마들렌 뵈메 외 지음, 나유신 옮김 / 글항아리사이언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고유 특성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의 역동적 문명 발달을 가능하게 했는가? 자신이 하는 일은 옛날 옛적의 뼛조각에서 정보를 뽑아내는 일이라고 말하는 지구과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마들렌 뵈메는 털이 없고 해부학적으로 장거리 달리기에 완벽한 구조를 가졌으며 모든 포유류 중 최고의 냉각 메커니즘을 장착한 데다 생리적으로 최고의 에너지 효율을 가진 존재라는 말로 장거리 달리기 선수로서의 인간을 요약한다.(290 페이지)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서술일뿐이다. 더 깊은 이야기가 이어져야 한다. ‘역사에 질문하는 뼈 한 조각’은 대형 유인원(類人猿)의 진화를 다룬 책이다. 대형 유인원은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 등을 의미한다. 유인원(anthropoid)은 원숭이류 중에서 가장 진화한 종으로 사람과 비슷하며 거의 직립보행을 한다. 원인(猿人)은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을 의미한다.

 

저자는 인간 이전에 발달했던 인간과 비슷한 피조물들을 호모속(屬)이라 지칭한다. 그리고 사람속의 멸종된 개체들을 원인이라 지칭한다.(49 페이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타웅,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 에티오피아의 아파르 지방,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는 오늘날 인류 진화 발달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지역들이다.(73 페이지)

 

서아시아 조지아의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한 나이 많은 남자 개체가 눈길을 끈다. 치아가 없고 턱뼈에 퇴화현상이 나타난 화석이다. 저자는 사회적 보살핌이 없었다면 180만년전 이 노인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325 페이지) 민족학 연구에 따르면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이 먹을 것을 먼저 씹어 노인에게 주는 원주민 집단들이 존재한다.

 

대형 유인원과 인간의 어금니 모양이 다른 이유는 씹을 때 각기 다른 조건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43 페이지) 1959년 피테칸트로푸스란 이름이 호모 에렉투스로 바뀌었다.(62 페이지) 키메라는 고생물학에서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가짜 화석을 의미한다.(65 페이지) 인간은 누구나 자연 연구가의 소질을 지니고 있다.(108 페이지) 이런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거리들도 꽤 쏠쏠하게 읽힌다. 

 

이 책의 주지(主旨)는 인류의 진화가 아프리카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님을 주장한 데 있다. 저자는 침팬지 라인에서 분리되어 나와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현재 가지가 하나씩 뻗어나는 계통수(系統樹)라기보다 지류들이 갈라져 흐르다가 다시 합쳐지기도 하는 하천들의 수계(水系)와 비슷하다고 말하며 이 경우 어떤 지류들은 언젠가 실개천으로 잦아들다 사라져버린다고 덧붙인다.(321 페이지) 이 문장은 전편(全編)의 결론격의 말로 가장 핵심적인 한편 아름다운 메타포다.

 

저자는 많은 학자들이 모리타니 공화국의 대서양 연안에서 몽골까지 펼쳐진 사막 벨트가 인류의 초기 진화 과정을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로 제한시킨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막 가장자리의 불안정한 기후 지대야말로 인간의 초기 진화를 가속화한 요인이었을 것이라 설명한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나무 사바나를 포함한 숲이 많은 서식지와 스텝 유형의 지형이 번갈아가며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지중해와 동유럽에서 중앙아시아까지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이 변화가 두드러졌다. 이렇게 자주 바뀌는 환경에서는 환경에 적응할 줄 아는 원인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328, 329 페이지)

 

저자는 인류학자 로빈 데넬과 윌 로이브로익스가 만든 기발한 신조어인 사바나흐스탄(savanahstan)이란 말을 소개한다. 풀과 허브가 주된 식물인 사바나와 스텝 지역을 보고 만든 말로 초원 생태 시스템 전체를 일컫는다. 저자는 인류의 요람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사바나흐스탄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인류의 진화 계통이 아프리카에서 생겨나 전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생각을 아프리카 유래설(out of Africa theory)이라 한다. 독일의 귄터 브로이어가 만든 말이다.(172 페이지)

 

오늘날 생존하는 침팬지들이 그러하듯 선행인류도 이미 도구를 이용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호모속에 속한 존재들은 그들이 발견한 어떤 대상물을 그냥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 목적의식을 가지고 아주 특정한 용도에 사용되는 도구를 제작했다. 이것들을 인공물이라 칭한다. 이를 올도완 문화라 한다.(174 페이지) 2016년 학자들이 인도 판자브주 마솔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손으로 만든 도구를 발견했다. 260만년전에 사용된 것이다.(175 페이지)

 

하나의 특정 대륙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생태적, 기후적, 진화 역사적 관계에 기반해서 볼 때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현생인류와 데니소바인이 여러 장소에서 마주쳤고 공동의 자손을 생산했다는 사실이다.(337 페이지) 데니소바인은 신생대 제4기 홍적세 후기에 살던 화석 인류의 하나로서 2008년 7월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41,000년 전의 손가락뼈와 어금니 화석이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유럽인들은 약 2퍼센트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아시아인과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 원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344 페이지) 인간의 진화는 하나의 특정한 지리적 중심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넓은 지역에서 일어났다.(183 페이지) 저자는 아프리카 사바나의 동물상이 500만년전 유라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선행인류는 왜 이 규칙에서 예외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말한다.(238 페이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는 뇌 발달 및 뉴런 기능과 연관이 있다. 데니소바인 유전자는 뼈의 조직 성장을 조절하는 게놈 영역에서 발견된다. 지난 20년간 고유전학자들에 의해 여러 인간 종 사이의 혼합이 일어났음이 밝혀졌다. 이는 현재 호모 사피엔스라 부르는 가변적이고 적응 능력을 지닌 한 종이 형성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345 페이지)

 

현대 유전학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종의 인간들을 처치해버린 냉정한 살인자라는 혐의를 벗겨주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많은 동물 종을 멸종시켰다는 비난으로부터는 무죄 선고를 받지는 못했다.(346 페이지) 흥미진진한 책은 이렇게 끝난다. 아프리카 기원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저자를 진보적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의 치밀함과 흥미진진한 논리 전개는 충분히 높이 살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