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발견 - 지휘자가 들려주는 청취의 기술
존 마우체리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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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마우체리의 ‘클래식의 발견’. 오랜만에 만난 읽을 만한 음악책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고전음악은 공동체, 자연, 인간의 열망과 승리, 약점, 그리고 혼돈에 형식을 부여하려는 욕망을 기념하는 음악이다.(15 페이지) 같은 맥락으로 저자는 예술을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혼란스러운 것을 모방과 상징체계를 통해 조직적으로 구성하려는 인간 욕구의 결과물로 정의한다.(28 페이지) 저자는 인간이 대략 20만년전부터 지구에 살았다고 말한다.(26 페이지) 사피엔스를 두고 이르는 말로 보인다.

 

저자는 음악은 자연의 힘을 활용하는 바 여기서 자연이라는 말은 우리 주위의 자연과 우리 안의 자연 즉 인간의 본성 모두를 뜻한다고 말한다.(55 페이지) 여기서 스피노자의 능산적(能産的) 자연과 소산적(所産的) 자연을 떠올리게 된다. 능산적 자연은 세계의 근원적 원인체계를 구성하는 신과 신의 속성들이다. 소산적 자연은 세계의 결과체계를 구성하는 양태다.

 

초기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세상에 대한 은유와 상징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들은 대략 4만년전 동굴벽에 2차원 이미지를 그렸으며 이런 이미지를 3차원 동물의 재현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움직임을 나타내고 싶으면 동물에 다리를 추가로 그려냈다.(66 페이지)

 

새로 나온 연극을 보고 온 사람에게 무엇에 대한 내용이었어요?라고 질문할 수 있다. 고전음악에 대해서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대신 이렇게 물을 수는 있다. 어떻게 들리던가요? 하지만 여러분이 무언가를 느끼고 경험했더라도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미처 없을 수도 있다. 음악의 경험은 몸으로, 감성으로, 영혼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경험될 뿐인 무언가를 어떻게 묘사하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들렸다는 말은 표면적인 부분이나 양식을 기술하는 것이지 그 음악이 주는 느낌이나 효과는 전하지 못한다.(137, 138 페이지) 저자는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이 말한 신체 예산(body budget)이란 개념을 말한다. 그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돈이 필요할 때를 예상해서 자원을 미리 확보하듯 캄브리아기의 작은 생물들이 배고픈 포식자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살아남으려면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방법이 필요했다. 신체예산에 관한 한 예측은 늘 반응을 앞지른다. 포식자의 공격에 앞서 움직일 준비를 한 생물들은 포식자가 덮치기를 기다린 생물보다 생존 가능성이 더 컸다.(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26 페이지)

 

캄브리아기(고생대의 첫 시기)에 포식자가 출현함으로써 지구는 경쟁이 더 심하고 위험한 것으로 탈바꿈했다. 잡아먹는 자나 먹히는 자나 모두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를 더 많이 감지하도록 진화했다. 그들의 감각계는 더 정교하게 발달하기 시작했다.(앞의 책 24 페이지) 아무리 천재라 해도 일관되게 위대한 곡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181 페이지)

 

책 중간쯤에서 익숙하지 않은 작곡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안나 소르발스도티르(Anna Sigriður Þorvaldsdottir; 1977 - )다. 사람들은 날카롭고 거칠기 이를 데 없는 그녀의 음악을 그녀의 고향 아이슬란드의 초현실적 지질구조와 연관시키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블랙홀로 떨어지는 사변적 은유라 표현했다.

 

저자는 지휘자들은 영원한 학생이라 말한다. 공연에 참석하는 청중과 마찬가지로 항상 배우고 지식을 넓혀간다는 것이다.(201 페이지) 저자는 음악과 관련하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항상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 말한다. 청중이 음악의 궁극적인 해석가다.(207 페이지) 작곡가나 연주자의 취향이 어떻든 간에 궁극적으로 음악을 해석하는 사람은 여러분이다.(284 페이지)

 

도전과 좌절의 숱한 연습의 시간들, 고독하고 힘들기만 하고 보상은 없을 때가 많은, 그럼에도 손에 든 악기에 숙달하고 싶다는 목적, 그래서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여러분에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음악가들 모두가 자신이 고른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겠다는 일념에 평생을 바친다...모든 연주자는 저마다 얻고자 하는 이상적인 소리가 있다. 손목의 각도, 활이나 손가락 위치 등을 미세하게 바꿔가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상적인 소리에 다가가려 애쓴다.(222, 223 페이지)

 

타협은 정치나 종교, 철학 담론에서 다소 부정적인 어휘로 사용되지만 음악은 타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실내악은 타협을 통해 음악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다. 지휘자가 이끄는 관현악곡으로 규모가 커지면 타협이 이루어지는 과정도 달라진다.(248, 249 페이지) 여러분이 좋아하는 작곡가가 있다면 그 작곡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편으로 실내악보다 좋은 것이 없다.

 

운 좋게 연주자들을 볼 수 있는 작은 방에서 실내악을 듣는다면 여러분은 곧바로 공동 연주자의 위치로 끌어올려지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그들이 애쓰는 것을 느끼고 음악적 요소들을 서로 건네는 모습을 볼 것이다, 서로 눈을 맞추고 숨소리와 몸짓,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249 페이지)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꾸준한 지원과 영감, 비판, 보살핌을 여성들에게 의존하여 구했다.(273 페이지)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 ‘봄의 제전’을 실제로 작곡한 것이 아니라 ‘봄의 제전’이 지나가도록 통로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바그너도 ‘트리스탄과 이졸데’ 완성 악보를 보고는 내가 이 곡을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어란 말을 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책들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나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와 일단 그곳에서 쓰여지고 나면 내 몸을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나는 공허한 기분에 빠져 내 몸 속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나는 한 번도 나의 개인적 정체성을 느껴 보았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에 불과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곳에는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일종의 교차로인 것입니다.”(이정우 지음 ‘가로지르기’ 87 페이지)

 

저자는 우리는 영원히 음악과 함께할 것이라 말한다. 음악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는 유일무이한 것이기 때문이다.(293 페이지) 종횡무진 글 잘 쓰는 지휘자/ 음악교육자의 책은 이렇게 끝난다. 앞서 말한 스트라빈스키, 바그너의 경우 걸작을 쓴 사람이지만 만일 평범한 곡을 쓴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말하면 그 사람은 수준이 떨어지는 곡을 쓰고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사람처럼 보이려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꼭 걸작을 통해서만이 작곡가가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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