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이야기꾼을, 삶이라는 심지를 조용히 타오르는 이야기의 불꽃으로 완전히 연소(燃燒)시키는 사람으로 보았다. 이 이야기꾼론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야기꾼과 비슷한 해설사는 어떤가?

 

제주 지질공원 해설사 장순덕 님의 경우를 보자. 50년간 해녀로 살아온 이 분은 땅 위의 지질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물질 하며 본 익숙한 해저지형 이야기로 그 부분에 생소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당당히 해설사가 되었다.

 

어떤 분야에든 입문하고 나면 시간을 보낸 만큼 저절로 실력이 느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성장은 꾸준하고 효율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진부함에 대한 반감 또는 새로움에 대한 동경도 필요하다. 말로 하는 일은 현장에서 몸을 움직이며 하는 일과 달리 위험하지 않고 체력을 많이 요구하지도 않기에 애쓰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그러다 보면 국자가 국맛을 모르듯 맹탕 해설사가 된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연수(年數)의 의미는 없다.100년을 해설한들 나아지겠는가? '삼국지'에 사별삼일(士別三日) 괄목상대(刮目相對)란 말이 있다. 선비와 헤어져 삼일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된다는 말이다.

 

아무나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 괄목상대의 주인공은 못 되어도 나중에 시작한 사람에게 뒤지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