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지층, 습곡과 변동, 용암 분출 등등.. 이 용어들은 어딘가에서 접한 글이다. 그 어딘가는 지질학 책이 아닌 ’이야기의 끈‘이란 책이다. 여러 필자가 함께 쓴 이 책의 서론에서 김상환 교수는 죽간(竹簡)을 끈으로 엮은 모양을 나타내는 책(冊) 자체에 끈이 있다는 말을 한다.

 

나는 이 책을 ‘아리아드네의 실’ 또는 경(經)줄(세로줄)과 위(緯)줄(가로줄)을 염두에 둔 채 잡았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 글은 단연 김상환 교수의 글이다. ‘글쓰기의 단계와 창의적 사고의 논리’에서 필자는 글쓰기는 습관이되 습관의 왕국을 다시 상징의 왕국으로 만들어가는 습관이라 말한다.(238 페이지)

 

습관은 일정한 시기의 문화적 생태를 떠받치는 두꺼운 지층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위대한 창조는 그 묵직한 습관에 습곡과 변동을 일으키는 용암의 분출과 같다. 문제는 그런 분출이 일어나는 조건과 논리적 형식을 추려내는 데 있다.(244 페이지)

 

필자가 폭발이 아닌 분출이란 말을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 자신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것을 기괴하거나 일탈하는 것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것은 이전의 것과 다르되 모범이 될 만한 것이면 된다.(237 페이지) 폭발은 기괴하거나 일탈하는 것과, 분출은 이전의 것과 다르되 모범이 될 만한 것과 대응한다.

 

“문학적 글쓰기, 시적 글쓰기는 일상어의 수풀에서 말을 따와서 일상과는 다른 세계로 가져간다.”(245 페이지) 이곳에 은유가 등장한다. 일상어의 수풀이라는 말이다. 김광현 건축가의 책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에 나오는 스페인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에 열주(列柱)의 숲이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승효상 건축가는 고대의 신전이나 왕궁 혹은 기념탑이나 광장 등 여행 안내서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곳 대신 그곳 사람들의 삶이 눅진히 녹아 있는 거주지의 골목길 풍경에서 늘 큰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말하는 핵심은 달리 있다. 그는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았지만 그곳 골목길을 탐색하며 그 속에 기록된 수없이 많은 역사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삶이 완성한 건축의 아름다움, 그 일상의 미학을 만끽했다고 한다.(‘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참고)

 

메스키타(Mezquita)는 내가 즐겨 듣는 스페인 아트록 그룹 이름이기도 하다. 메스키타 같은 대 건축물이든 삶의 진실이 실린 소박한 골목길이든 여행객이 되어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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