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읽는 건축 이야기 - 인류와 건축의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탐색
후지모리 데루노부 지음, 한은미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후지모리 데루노보(藤三照信)는 건축가다. 그런 그가 건축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책(‘인문학으로 읽는 건축 이야기’)의 시작이 특별하다. 인류 이야기가 길게 나열되어 있다. 구석기, 신석기 이야기가 그것이다. 인류는 농경 생활 이전에 사냥 생활을 했다. 만일 사냥 생활만 했다면 집이나 건축물은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냥 생활에서 이동은 필수다. 토기와 간석기(마제석기)는 중요 발명품이다. 점토를 구운 토기를 발명함으로써 식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굽기, 밥 짓기 등이 가능해졌다. 250만년전에 인류가 처음으로 손에 넣은 뗀석기(타제석기)는 흑요석처럼 상당히 딱딱하면서도 잘 쪼개지는 유리질의 화강암 석재로 진화했으나 그것으로는 나무의 표면 등을 깎아낼 수 있었던 반면 벌목용으로는 한계가 있었다.(일부 흑요석은 오늘날의 수술용 칼인 메스보다 잘 들었다.)

 

그래서 간석기가 발명되었다. 간석기로 큰 나무를 벨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 않은가? 실험 고고학에 의하면 간석기는 철제 도끼의 1/ 4의 성능을 가졌다.(철도끼로 15분 걸리는 것을 간석기로는 60분이 걸린다는 의미.) 부드러운 돌도끼는 딱딱한 돌 이상으로 빨리 나무를 벨 수 있다는 의미다. 간석기를 사용한 시기는 뗀석기를 사용한 구석기 시대와 대비되어 신석기 시대로 불린다.

 

간석기는 농경 및 목축과 밀접하다.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지 2천년이 지나 농경시대가 열렸다. 식량 확보면에서 농경은 수렵을 압도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발명품인 농업은 평소 감자를 캐거나 열매를 주워오던 여자들이 발명했다. 나무를 베기 위해 발명한 간석기가 농업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농업으로 인해 큰 변화가 도래했다.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고 식량을 장기적으로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간석기에 힘입어 인류는 숲을 개발하고 농업 발달을 가속화했다. 임시 거처인 움막 대신 움집을 만들었다. 농경이 시작되었어도 수렵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신석기 시대 집의 출현함으로써 인간의 자기 확인 작업이 강화되었다고 말한다.(43 페이지)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원시시대라 한다. 당시 신(神)은 필수적이었다.

 

구석기 시대에 지모신이 있었다. 구석기 시대 대지를 의식한 지모신앙과는 정반대로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강하게 의식한 신앙이 신석기 시대에 출현했다. 농경이 핵심이다. 농경은 씨를 제때 뿌려야 수확이 가능한 방식이다. 우물쭈물하면 한 해를 망치는 것이다. 태양도 중요했다. 천수답(天水沓)이란 말이 있다. 이때 천(天)은 기후를 말하고 특히 가장 중요한 태양을 의미했다.

 

생명 현상의 에너지는 모두 태양으로부터 온다. 태양이라는 남성적인 절대신을 농업을 통해 발견한 것은 지모신적인 여성들이었다. 신석기 시대에 출현하는 거식 건축물과 늘어선 돌기둥은 태양을 향해서 만들어졌다. 절대성과 유일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거대하게, 또 태양에 다가갈 만큼 높게 만든 것이다.

 

농경과 수렵이 병행되었듯 태양신앙과 지모신앙이 병행되었다. 지모신앙이 건물의 내부를 만들었다면(장식했다면) 태양신앙은 외관(外觀)을 만들었다. 이 두 신앙이 만나 (주거가 아닌 또는 주거와 구별되는) 건축이 탄생했다. 신석기 시대에 인간의 집이 태어났고 신의 거처가 생겨났다. 주거는 개인의 것이지만 건축은 신과 사회의 것이다. 건축은 만들어짐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의식을 조직화했다.

 

주거는 그 곳에 사는 사람이 자신을 확인하는 도구였고 건축은 사회 구성원들이 우리를 확인하는 도구였다. 신석기 시대에 탄생한 신전이라는 이름의 건축 외관의 특성을 가장 순도 높게 나타내는 것이 입석(立石)이다. 건축 외관은 입석에서 시작되었다. 입석이 천문대로 사용된 건축물이라는 말이 있긴 하다.

 

저자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의 장례 예식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 틀림 없다고 말한다.(69 페이지) 다만 신석기 시대에 시작해 청동기시대로 진행하면서 태양을 향해 왕의 혼을 발사하던 당초 목적이 잊히고 태양을 숭배하는 장소로 바뀌었을 가능성은 있다. 입주(立柱)는 태양의 움직임을 강력하게 의식해서 세워진다.

 

신석기 시대가 끝나고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세계 각지에는 크고 작은 여러 국가가 성립하게 되고 그중에서도 나일강,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황하 등 네 개의 큰 강 유역에는 청동기라는 신기술과 문자, 관개(灌漑)에 의한 대규모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한 국가가 출현한다.

 

4대 문명의 건물에는 이렇다 할 공통점이 눈에 띠지 않는다, 청동기, 문자, 대규모 농업은 공통되지만 그런 힘에 의해 얻어진 부를 투자해서 건물이 만들어질 때는 정치와 종교, 나라마다 구할 수 있는 재료가 각기 달라서 건물이 다르게 지어졌다. 저자는 자신의 책이 전례 없는 책이라고 말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책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인류 건축의 역사는 시발점인 원시시대와 종점인 현대에는 다양성이 없고 지구 어디를 가도 같은 풍경인데 반해 시발점과 종점 사이의 건축물은 각 나라, 각 지역만의 특성과 다양성으로 넘쳐나서 부풀어올라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은 데에는 사연이 있다. 김광현의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에 나오는 “인류는 수렵 시대에 지모신을 섬겼으나 청동기 시대에는 태양신을 섬겼다. 지모신에게는 공물을 바쳤으나 태양에게는 의미가 없어 하늘을 향해 기둥을 세웠다.”는 구절로 인해서다. ‘인문학으로 읽는 건축 이야기’에 관련 이야기가 있지만 일부에 한한다. 물론 ‘인문학으로 읽는 건축 이야기’가 먼저이고 김광현의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가 나중이다. 다른 곳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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