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매일 잠언(箴言)을 보내주는 동료 해설사가 이틀째 새 내용을 보내지 않아 톡을 보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는 ”저는 고린도 전서 13장 12절을 좋아합니다."란 말을 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 것입니다.’란 구절이다.

 

덧붙여 나는 이 구절은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란 구절 바로 앞에 자리한 구절입니다란 말을 했다. 내가 이 구절을 만난 것은 서동욱 교수의 ‘일상의 모험’에서다.(당연히 성경 구절은 성경에서 만나는 것이지만 어떤 책에서, 어떤 맥락에서 인용된 구절을 읽느냐도 중요하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서동욱은 얼굴이란 신성(神性)이 직접 현전하는 장소라는 말을 했다. 옛사람들은 얼굴을 얼골로 불렀다. 이 말은 얼 즉 정신이 모인 골짜기란 의미다. 얼은 정신의 줏대를 의미하는 말로 당연히 정신이란 말보다 예스럽고 깊이가 있다.

 

오늘 ‘여성이 만난 하나님’에서 또 하나의 고린도 전서 구절을 만났다. ‘여성이 기독교 신앙을 말하다’란 장에서 저자(강호숙 박사)는 교회 내 어른아이들이 배워야 할 구절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는 구절을 제시했다. 이 구절은 얼굴을 이야기한 구절 바로 앞의 구절이다.

 

정리하면 오래전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사랑이 제일이라는 구절(고린도전서 13장 13절)을 의식하며 지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그 앞 구절(13장 12절)을 만났고 오늘 다시 그 구절의 앞 구절(13장 11절)을 만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13장 11절에서 과거(어릴 때)와 현재(장성한 때)를 대비했고 12절에서는 현재와 미래를 대비했다.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고, 지금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온전히 알 것이라니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부분적인 앎에 지치고 무력할 때 나는 언젠가 온전히 아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고 어려움을 이기려 애쓴다. 물론 종교적 의미와 일상의 의미는 다르지만 상통하는 바가 있다. 내가 말하는 온전한 앎이란 인식의 한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명료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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