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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vs 라이프니츠 ㅣ 세창프레너미 9
서정욱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1년 3월
평점 :
‘스피노자 vs 라이프니츠‘는 세창 프레너미 시리즈의 한 권이다. 프레너미란 프렌드(friend; 친구)와 적(enemy)을 합성한 말이다. 아니 적이라기보다 라이벌이라고 해야겠다. 결론을 말하면 프레너미란 적이면서 친구인 사람을 가리킨다. 이베리아반도, 북아프리카 등으로 이주하여 살아남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세파르디 유대인이라 한다.
스피노자 아버지 미카엘은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프랑스 낭트에서 아버지와 함께 무역상을 하다가 162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대인은 네덜란드법에 의해 관직에 나갈 수가 없고 랍비가 되기 위한 교육만 허락되었다. 스피노자의 할머니는 거짓 개종 혐의로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다.
스피노자는 형의 죽음으로 교육을 계속 받아나갈 수 없었다. 가려져 있던 스피노자의 학구열을 끌어낸 사람이 최고의 스승 판 덴 엔덴이다. 스피노자보다 30년 연상인 분이다. 스피노자는 유대교에서 금지한 신비철학을 연구하는 등 반교회적 행동을 함으로써 유대 공동체(교회)로부터 추방당했다. 하지만 그는 대신 철학 연구에 매진할 자유를 얻었다.
스피노자는 기다렸다는 듯 이름을 바루흐에서 베네딕투스로 바꾸었다. 바루흐, 베네딕투스 모두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다. 파문건으로 스피노자는 두 가지 사건을 겪는다. 하나는 한 광신도가 그런 악마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며 어두운 밤에 스피노자를 칼로 습격한 사건이다. 다행히 스피노자는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
한편 스피노자는 파문당한 사람은 재산 상속권이 없다는 이유로 여동생이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겪는다. 스피노자는 소송에서 이겼지만 아버지의 가업에 관심이 없어서 상속권을 포기하고 모든 재산을 여동생에게 넘겼다. 유대사회는 율법학자가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반드시 한 가지 기술을 익히도록 의무화했다.
스피노자는 광학 기술과 현미경과 망원경 등에 들어갈 렌즈 만드는 기술을 습득했다. 피습 및 소송 사건 이후 스피노자는 본격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 연구로 유명해져 진정으로 데카르트를 추종하고 전공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불편해지자 레인스뷔르흐를 떠나 레인스뷔르흐보다 큰 도시인 포르뷔르흐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스피노자의 교제 범위는 하루가 다르게 넓어져갔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의 성공으로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았으나 자신이 누리는 지위보다 더 높은 지위를 원하지 않으며 공직이 자신이 사랑하는 조용함과 자유를 빼앗는 것이 싫다며 정중히 거절한다. 스피노자의 사상이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이어갔다.
후원자가 렌즈 깎기를 그만두고 철학 연구에만 몰두할 것을 제의했지만 스피노자는 어쩔 수 없이 받은 후원금은 동생 가브리엘에게 주고 생활에 꼭 필요한 후원금 정도만 받았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자유다. 남의 돈을 받는 순간 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쪼개야 하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자신을 위해 썼다. 후원인이 없었기에 ’윤리학‘을 쓸 수 있었고 ’신학정치론‘이 금서목록에 올라갔음에도 후원인에게 갈 피해가 없었기에 걱정할 일이 없었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자유이고 조용함이다. 폐 질환은 스피노자 어머니 집안의 병력이었다. 가족력과 그의 생활은 그의 삶을 더 악화시켰다. 스피노자가 죽자 그의 지혜를 사랑하고 존경한 많은 사람이 종교를 떠나 그의 순수하고 순박한 삶을 애도했다.
라이프니츠의 아버지 프리드리히의 성은 라이프니츠가 아니라 라이프뉘츠였다. 라이프니츠는 뉘른베르크 대학의 교수 자리를 거절하고 뉘른베르크 연금술사 협회에 가입해 미래를 개척하는 길을 택했다. 라이프니츠로서는 뉘른베르크에서 나름의 전환점에 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적분을 두고 다투었던 뉴턴처럼 라이프니츠도 연금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라이프니츠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인물은 토마지우스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전공자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따르는 대부분의 종교와 달리 창조자와 피조물, 신과 자연의 분리를 주장하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그리스도교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라이프니츠의 천재성 뒤에는 아버지의 노력도 없지 않았다.
라이프니츠의 아버지는 루터파 개신교도의 경건주의자답게 라이프니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신의 계시라고 믿었다. 종교는 인간에게 모든 곳에 신이 있고, 모든 것을 움직인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과학의 발달로 신, 인간. 자연을 함께 생각하지 않고 따로 파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기계론적 자연관이고 기계론적 철학이다. 성리학이 우주, 인간, 사회, 자연을 관통하는 학문체계를 구축한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라이프니츠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후견인의 도움을 뿌리칠 수 없었다. 스피노자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후견인의 도움을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랍비가 되기 위해 경전을 공부한 스피노자는 라틴어를 깨우치면서 철학자가 되었다. 아버지 서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접한 라이프니츠는 철학자보다 더 깊은 뜻을 품고 대학보다 사회로 나섰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을 구별하면서 신, 자연, 실체에 관해 설명했다. ’윤리학‘이 자유가 인간 지성 또는 이성의 자유를 논한 책이라면 ’신학정치론‘은 인간 신체와 욕망이라는 정치적 자유를 논한 책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공포가 미신을 낳고 그 미신이 집단에 의해 조직화된 것이 종교라고 보았다.
스피노자는 신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이 모순이지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피노자는 모세의 율법 어디에도 신이 육체가 없다거나 심지어 형태나 형상을 갖지 않는다는 믿음을 적은 바 없다. 다만 유대인들에게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하고 오직 그만이 경배되어야 하는 신이라는 것을 믿으라고만 요구한 것이라고 썼다.
저자는 이성적 사유 활동도 지적 능력이 지나치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지적 상상력을 강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상상력이 지성의 자리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라 말한다. 예언이란 상상력이 풍부한 예언자의 상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율법서에서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지식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결국 미신에 불과하다.(68 페이지)
철학자마다 다른 방법으로 신 존재 증명을 한 것처럼 율법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도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증표를 보았고 예언이나 계시를 자신의 견해에 따라 도덕적으로 해석했다.(69 페이지) 스피노자는 예언을 도덕성으로 보았기 때문에 같은 도덕성을 가진 공동체가 가지는 신의 본성 역시 같은 것이 된다. 스피노자는 율법서를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도덕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철학적으로 논리와 이성을 가지고 해석하기를 원했다.(72 페이지)
라이프니츠는 신은 선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결코 악을 만들지 않았다는 변신론을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세상은 필연적으로 선하고 완전하게 움직이도록 정해져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일어날 것이 일어난다는 필연성을 생각하고 쾌락주의적인 생각과 행동에 빠진다. 라이프니츠는 완전한 지성을 발휘하지 않을 때를 가리켜 초기 스토아학파에서 나타난 게으른 이성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사람들은 일어날 것은 일어난다는 생각 때문에 숙명론에 빠지기도 한다. 이는 부정적이다. 필연성이란 생각으로 숙명론에 빠지거나 쾌락주의에 빠지는 것 모두 문제다. 두 경우 모두 게으른 이성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다. 라이프니츠는 신은 전지전능하며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지만 악은 결코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숙명이나 운명의 필연성으로 악을 저지르거나 나태해지는 것은 신의 필연성이 아니라 인간의 필연성이라 강조했다.(84 페이지)
라이프니츠는 피조물이 악을 저지를 것을 충분히 예견하고도 그것을 허락한 것은 피조물에게 자유로운 행동을 할 기회를 준 것이라 보았다. 스피노자가 유대교를 비판하고 율법서를 부정하면서 파문에 이르게 되도록 영향을 받은 첫 번째 인물은 세파르디 유대인이었던 야코스타다. 성경은 인간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사람이다. 스피노자가 파문 당한 이유와 야코스타가 파문 당한 이유는 많이 닮았다.
스피노자가 만나지 말아야 했던 위험한 또 한 사람은 마사니엘로다. 그는 1647년 지나치게 많은 세금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나폴리 시민이 참다못해 일으킨 시민봉기의 지도자다. 스피노자가 만난 또 하나의 인물들은 아드리안 쿠르바흐, 요하네스 쿠르바흐 형제다.
스피노자가 만난 위험한 인물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스승 판 덴 엔덴이다. 철학사에서는 스피노자가 판 덴 엔덴이 가르친 라틴어를 바탕으로 철학을 하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모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판 덴 엔덴은 안트베르펜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와 예수회 수도원에서 공부를 하고 1619년 예수회 수도원에 신부가 되기 위해 입회한다.
이후 그는 루벤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예수회 수도원에서는 라틴어, 수사학, 그리스어, 수학 등의 교육을 받고 1624년 이후 네덜란드 각지의 예수회 수도원을 다니며 교수로 활동했다. 판 덴 엔덴은 스피노자에게 라틴어를 가르친 스승이라고 하기에는 역할이나 영향력이 너무나 컸다. 그는 히브리어로 ’탈무드‘만 읽으면서 학구열을 불태우던 스피노자의 숨겨진 학구열을 끌어낸 스승이다.
판 덴 엔덴은 급진적 진보주의자였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스피노자에게 다방면에 뛰어난 실력을 갖춘 판 덴 엔덴은 스피노자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충분한 스승이었다. 판 덴 엔덴은 무신론자이자 범신론자였다. 스피노자가 혁명적 철학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좋은 스승 판 덴 엔덴과의 혁명적이고 위험한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을 정의, 공리, 증명 등의 수학 용어를 써서 기하학적으로 서술했다. ’윤리학‘의 주제는 신이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실체이자 자연이다. 나머지 피조물은 모두 양태(樣態)다. 인간이라는 피조물은 전혀 자유롭지 못하지만 다른 피조물에 비해서는 자유롭다. 스피노자는 신은 유일하고 무한한 자기원인으로 필연적으로 실존하는 우주의 실체임을 증명하고 있다.
우주 안에는 하나의 실체가 있다. 곧 신이다. 실체로부터 나온 모든 양태는 신 안에 있다. 스피노자는 실체란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라 정의했다. 실체의 속성은 변해도 실체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다른 속성으로 구별되는 개개 실재를 양태라 한다. 실체란 다른 것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자기원인이다.
양태는 다른 것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양태는 한정적이고 다른 사고에 제약을 받는다. 내적 양태도 있고 외적 양태도 있다. 스피노자는 신 또는 자연이라는 말을 했다.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결정론적 세계관도 그렇다. 능산적 자연이란 실체의 속성인 영원성, 무한성, 자기원인성을 갖는 신과 같다.
소산적 자연이란 신의 본성이나 신의 각 속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생산되는 자연 속의 모든 개개 실체를 의미한다. 소산적 자연은 신 안에만 존재하고 신이 없다면 존재하지도 않고 생각되지도 않는 모든 양태다. 능산적 자연인 신의 운동에 따라 개개 실재의 소산적 자연이 생겨난다. 신은 능산적 자연이다. 자연 속에는 유일한 실체만이 있기에 신 또는 자연을 신 즉 자연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스피노자가 무신론자라는 비판을 받았기에 신 존재 증명을 했을 것이라 말한다.(174 페이지) 스피노자는 신 존재 증명이란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신에 대한 불경이기 때문이다. 신 존재 증명이라는 말은 그의 연구자들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개개 실재 상호간에 어떤 공통점도 없다면 이들은 서로 상대방에 의해 인식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중 하나는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없다.(175 페이지)
스피노자는 최초의 원인이 필연적인 신이라고 말했다. 다른 실체에서 산출될 수 없는 실체야말로 자기원인이다. 신 또는 영원하고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스피노자는 물질적 자연의 보편적 질서에 신의 문제를 적용시켰다. 신의 존재 유무는 실체의 본성에 따른다. 그리고 신이 존재하는 원인에 방해가 없다면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177 페이지)
신 존재 유무의 원인을 신의 본성 외 다른 실체의 본성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피노자는 신 즉 자연을 실체라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신, 자연, 실체의 동일성을 강조했다. 스피노자의 세계관은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스피노자에게 지성은 신의 속성과 변용을 파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 지성은 능산적 자연이 아니라 소산적 자연이다.
지성은 사유의 양태이기 때문에 절대적 사유로 이해할 수 없는 소산적 자연이다. 스피노자에게 능산적 자연은 신, 자연, 그리고 실체와 동일하다. 자유 원인이 아닌 필연적 원인에는 인과율이 적용된다. 의지는 무한하지만 신의 존재와 작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신과 같이 절대적인 무한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단지 의지는 신의 영원성과 무한성의 본질에서 나오는 무한한 속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무한한 속성을 가진 의지는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하다고 할 수 있다.(189 페이지) 스피노자의 결정론적 세계관과 같은 사상이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이다. 스피노자가 신을 자연과 동일시함으로써 얻은 결과는 무신론자라는 논란거리의 비판이다. 스피노자는 자연을 초월한 인격적인 신을 부정했다.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가 헤이그에서 만났을 때 젊은 스피노자는 이미 자신의 철학을 모두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211 페이지) 스피노자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철학을 후대까지 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철학에는 경험의 세계도 중요하지만 사유의 세계도 만만치 않다. 스피노자는 근대에 중요 주제로 떠오른 바로 이 사유의 세계를 특별한 지위까지 올린 철학자다.
스피노자는 살아서 고통을 받았고 죽어서 행복을 얻었다. 라이프니츠는 살아서는 행복했지만 죽어서는 고통을 받았다. 라이프니츠가 죽음으로써 그의 철학도 묻혔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 부활했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데카르트는 대륙의 합리론자로 불린다. 분명한 것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함께 상대가 있어 상승한 사이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