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 네트워크 경제 입문자를 위한 가장 친절한 안내서
강성호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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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인쇄술에 이어 세 번째 정보 혁명으로 네트워크 경제를 제시한 책이다. 제목은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이다. 플랫폼이란 원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를 의미했다. 오늘날 플랫폼을 대표하는 것은 인터넷 공간이다. 만남은 연결을 의미한다. 플랫폼은 소비자와 판매자를 매개한다. 메신저, 뉴스, 상품, 콘텐츠, 숙박, 신용카드, 결혼 상대 등이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을 즐겨 했다. 어떤 일에는 그만한 기회비용 즉 대가(代價)가 따른다는 말이다. 양면시장이란 말이 있다. 남성은 낮은 가입비를, 여성은 높은 가입비를 부담하는 결혼정보회사처럼 비용을 지불하는 쪽과 혜택을 받는 쪽이 다른(있는) 시장을 말한다.

 

네트워크 경제를 이해하는 강력한 프레임을 제공하는 양면시장 이론은 플랫폼 서비스의 이용료가 공짜인 이유를 설명한다. 소비자들이 카카오에 아무런 비용을 내지 않는 것은 광고주들이 카카오의 운영비용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도 카카오에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다. 광고 노출이라는 비금전적 비용이다.

 

광고가 싫다고 해서 다른 메신저를 사용할 수도 없다. 이미 카카오가 메신저 시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경제는 ’더 많은 노동시간‘ = ’더 많은 소득’이라는 공식을 붕괴시키고 있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놀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스포츠 스타, 인기 학원 강사, 연예인)은 최소의 노동력만 투입할 뿐 소득은 TV나 인터넷 등의 네트워크가 창출한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공유할 수 있는 재화, 서비스는 상품에서부터 노동력, 컴퓨팅 파워까지 무궁무진하다. 미래에는 인공지능 서비스, 의사결정 지원 서비스, 사랑과 우정 등의 감정도 공유될 수 있다. 경제 권력이 정치 권력을 압도하는 기업사회가 도래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경제 권력은 자본파업의 가능성을 통해 힘을 휘두른다.

 

자본 파업은 자본가가 공장을 짓지 않는 것, 해외로의 공장 이전(오프쇼어링) 등을 말한다. 자본 파업은 정부가 가장 두려워 하는 상황이다. 법과 제도도 사람들에게 적용되면 현상을 유지하려는 관성(제도의 경로의존성)을 지닌다. 플랫폼 기업들은 너무도 손쉽게 개인정보를 얻고 있다. 대부분 별생각 없이 플랫폼 기업에 개인정보를 퍼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개인정보를 대하는 태도도 이중적이다. 대다수 사람은 개인정보 보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개인정보를 너무도 쉽게 제공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를 프라이버시 역설이라 한다. 연결 그 자체가 권력이다. 연결 그 자체가 권력으로 작용한 사례의 대표는 우리나라의 촛불집회다. 촛불집회의 원동력은 연결 그 자체다.

 

리더도, 별도의 조직도,위계질서도 없이 모인 그들은 누구의 강요나 돈에 의해 그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는 1대 9대 90의 법칙이 있다. 90퍼센트는 단순 관망자이고 9퍼센트는 재전송이나 댓글로 확산에 기여하고 1퍼센트만이 콘텐츠를 창출한다.

 

수많은 사람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인터넷상의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소비, 확산할 뿐 사실을 검증하지 않는다. 따라서 뉴파워(네트워크에 연결된 대중)는 항상 선한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SNS는 동질적인 정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규합하는 일종의 디지털 정당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플랫폼 경제에서 독점은 일반적이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신용카드업은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신용카드사는 소비자와 가맹점을 이어주는 전형적인 양면시장 플랫폼 기업이다. 사람들이 다양한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는 현상을 멀티호밍이라 한다. 여러 채의 집을 두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의미다.

 

플랫폼 시대에는 경영 전략도 변해야 한다. 플랫폼이 개인의 성향을 분석하고 취향에 맞춘 콘텐츠를 우선 노출시키는 것을 큐레이션이라 한다. 큐레이션은 본래 미술관에서 기획자가 우수한 작품을 뽑아 전시하는 행위를 의미했지만 이제는 플랫폼 기업이 소비자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큐레이션은 오래전부터 기업의 중요 활동 중 하나다. 책을 보기 좋게 편집하는 일, 이마트가 상품을 보기 좋게 진열하는 일 등은 판촉수단이지만 더 좋은 상품을 전달하기 위한 큐레이션 작업의 일종이다. 개인도 큐레이션 작업을 한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잘 나온 것을 골라 메신저 프로필로 올리는 것이 그렇다.

 

영어 단어 talent는 무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talanton에서 유래했다. 탈란톤은 성경에서 달란트로 번역된다. 달란트는 그 무게에 해당하는 동전의 가치를 가리키면서 자연스레 화폐단위가 되었다. 돈과 재능은 어원이 같다. 돈이 곧 재능이다. 재능이 있어도 충분한 자본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기회를 잡기 어렵다.(성공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잡기 어렵다는 의미)

 

저자는 카카오도 금융 네트워크가 될 수 있을까란 말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은행은 판매 플랫폼이 아니라 서비스 플랫이 되는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 마지막 파트인 네트워크가 만드는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는 결론격의 장이고 가장 재미 있는 장이다.

 

플랫폼 기업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금산분리가 있듯 플랫폼과 산업을 분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인공지능에 의한 외부 감사제도도 있다. 데이터 공룡들의 독식이 문제다. 노동이 사라지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할까? 저자는 인공지능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아니 인공 지능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J.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디즈니의 ‘겨울 왕국’,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 등은 과거에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한 작품들로 기존 데이터를 조합하고 응용하는 것으로는 창작하기 어렵다. 2013년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에는 잔에 물이 차면 넘치는 부분이 가난한 이들의 혜택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잔이 차기도 전에 기업들이 가득 찬 잔을 더 키우는 마술을 부린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낙수(落水) 효과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 뒷 부분에서 저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서울 도심의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 것은 좋은 교육을 받고 나름으로 노력한 덕분이지만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는 가장 치명적인 우리나라의 아킬레스건이다.

 

공유가 키워드다. 토지 공개념도 그렇고 카피레프트 운동도 그렇다. 모든 국민이 플랫폼을 조금씩 공유한다면 과거의 생산수단을 소유한 기득권자들의 혁신에 대한 반감은 감소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사유(私有)와 공유(共有)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승자독식이 아닌 보통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하다.

 

기술이 인간을 위해 일하고, 돈보다 사람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제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네트워크가 촉발하는 변화가 두렵다고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다. 저자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책이 읽을 만한 책일 수도 있고 아무런 영감도 주지 않는 범서(凡書)일 수 있겠지만 자신의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준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꽤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었다. 상술할 수 없지만 저자의 몇몇 개념과 아이디어로부터 다른 분야에 응용할 단서를 얻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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