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책 만드는 법 - 세계와 삶을 공부하는 유연한 협력자로 일하기 위하여 땅콩문고
이진 지음 / 유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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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의 '인문교양책 만드는 법'은 16년 경력의 인문교양책 편집자가 쓴 책 만드는 것에 관한 "자기 이야기"다. 자기 이야기란 말은 "내가 예전에 이렇게 해 봤는데..."라며 말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일이 즐거워지고 자신감도 생긴다는 저자의 말에서 나온 이야기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잘 팔리는 인문교양책 만드는 법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을 소심한 편집자라 말한다. 그것은 아무에게나 적극적으로 집필 제안을 하지 못하는 편집자란 의미다. 저자는 자신을 생면부지의 필자보다 옷깃이라도 스쳐본 사람에게 연락(집필 제안)을 하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관건은 책을 쓰는 이가 남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는가이고 다른 사람은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다.

 

저자는 책이 책을 낳는 영화 같은 일은 당연히 더 오래 일한 사람, 더 많은 책을 만들어 본 사람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책에는 편집자와 저자의 인연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저자는 필자의 경험과 생각이라는 넓은 틀 안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며 필자 스스로 가장 쓰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마침내 쓸 결심을 할 수 있도록 약간의 자극이나 환기를 할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서둘러 책을 많이 내서 성공의 경험을 나눠 갖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긴 시간 함께 성장해 간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초조나 서운함에 관계를 망치지 않고 오래도록 좋은 파트너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의 책을 통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편집자의 나이, 성별, 경험, 관심사 등이 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편집자에게, 특히나 인문교양 편집자에게 일과 사적인 삶을 분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말한다. 저자는 어떤 분야에서든 실패를 돌아보는 것만큼 큰 배움은 없을 것이지만 실패의 예로 어떤 책을 든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책은 편집자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공자는 사람을 평가할 때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사람의 행동을 평가했다는 이야기다. 저자가 말하는 실패란 당연히 시장에서의 실패이고 거론한 세 책은 "뒷담화를 하기에 덜 부담스러운 번역서"다. 저자는 아무리 성실하고 꼼꼼한 책도, 심지어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나도 상품으로서는 실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진짜 실패의 원인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누구도 정답을 말해 주지 않기에 스스로 정답에 가까운 말을 찾고 그것을 믿고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의 책을 통해 좋은 책은 주제의식, 구성, 문장 등이 두루 좋아야 한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러기 위해 편집자는 세상에 대해 저자가 기울이는 것에 못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저자의 어법으로는 주요 분야의 깨알 같은 지식과 정보를 다 알 필요는 없고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알아채고 포스트잇을 붙이는 정도의 소양 정도는 쌓아 나가는 것이 좋다. 저자는 편집자가 놓이는 상황도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해답을 제시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서두에 책을 쓰기로 한 계기, 문제의식이 잘 드러났는가, 본문에서는 그것에 답하기 위한 탐구, 조사, 경험, 만남 등이 설득력 있게 구성되고 배치되었는가, 마지막에는 이 과정을 통해 얻은 자기만의 생각, 관점, 혹은 한 걸음 나아간 문제 제기가 분명하게 담겼는가, 이런 것이 어느 정도 갖춰져 한 편의 이야기로 잘 짜여 있다면 문장이 다소 거칠거나 사례가 부족하거나 약간 중언부언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88, 89 페이지)

 

저자가 말한 것처럼 오탈자보다 더 문제는 문장이 잘 안 읽힌다, 편집자가 컨셉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 팩트 체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등의 평을 받는 것이다. 저자는 제목을 여덟 유형으로 나눈다. 1) 구체적 효용(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 생각 비틀기/ 호기심 유발(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3) 문학적, 함축적, 간접적(아픔이 길이 되려면), 4) 이름 붙이기(피로사회), 5) 문제 제기(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6) 저자의 의지, 책의 주장(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7) 저자가 누구인가(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8) 이 저자라면 어떤 제목이라도(열두 발자국) 등이다.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편집에 대한 내용 외에 주요 책들에 대한 정보도 알게 된다. 저자는 번역서는 얼핏 보면 이미 다 만들어진 책을 언어만 바꿔서 내는 수동적이고 닫힌 일 같지만 알고 보면 편집자의 더 섬세하고 세련된 감각이 필요한 작업이라 말한다.(141 페이지) ”나는 경력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책을 잘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146 페이지)

 

저자는 인문교양책은 생각보다 꽤 많이 트렌디한 분야라 말한다.(146, 147 페이지) 이 말을 접하니 김백철 교수의 ‘왕정의 조건’에서 읽은 구절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탕평군주 정조는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홍국영에게 조정당하는 우둔하고 바보 같은 허수아비 군주 내지 아버지를 잃은 가련한 임금에 지나지 않았다(36 페이지)는 구절이다. 이는 트렌디의 변화라기보다 우리사회가 민주화된 결과라 생각할 수 있다.

 

저자의 책은 재미 있다. 내가 잘 모르는 편집 또는 출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갈등 또는 어려움 등이 리얼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서로에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뇌 구조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서로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162 페이지)

 

저자는 혹시라도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책과 저자가 나의 부족한 설명으로 인해 소홀히 여겨지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용을 자꾸 덧대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고 그 책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면 쓸데없이 구구절절 늘어놓았구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고 한다.(169 페이지) 공감가는 이야기다.

 

책에는 보도 자료, 추천사 등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한다는 내용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보도자료나 추천사를 거의 읽지 않고 책을 사는 나에게는 의미 없는 이야기다. 편집자로서의 고민이나 어려움은 충분히 상상이 간다.(나는 어느 정도 본문을 읽고 책을 산다. 인터넷에서는 목차나 저자의 말 등을 읽고 산다.)

 

저자는 편집자란 완고한 장인보다 유연한 협력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간 얇은 책을 은근히 얕잡아 보던 지난 날을 깊이 반성한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며 아무리 매끈하게 보이는 글이라도 상당히 긴 노고와 분투의 결과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이든 직접 부딪혀 보아야 어려움도 알게 되고 발전도 이루는 것이리라. 편집자가 아니라도 읽을 만한 유익한 책을 쓴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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