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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ㅣ 동양문화산책 4
사라 알란 지음, 오만종 옮김 / 예문서원 / 1999년 6월
평점 :
지은이 사라 알만은 동양언어학 박사다. 저자의 책은 뿌리 은유에 대한 탐구서다. 저자에 의하면 뿌리 은유란 추상적인 생각을 개념화하는 데 내재하는 구체적 모델이다.(38 페이지) 저자의 의도는 “물이나 식물 같은 자연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인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열쇠들을 끌어“(53 페이지)내는 데에 있다.
저자는 일단 형성된 개념들은 다른 층차의 의미나 외연을 갖는 추상적 생각들로 발전하기에 개념과 이미지 사이에 단일한 일대일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55 페이지) 또한 어떤 개념들이 함축한 이미지를 이해하게 되면 그 개념들의 관계에 내재한 논리도 드러내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106 페이지)
이끄는 말, 물, 물의 도, 물의 덕, 물의 철학자들, 맺는 말 등으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를 물의 철학자라 명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물, 하면 거의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함을 느껴 읽게 된 책이다.
저자는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원리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원리들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한다. 이끄는 말의 첫 부분에 맹자의 제자 서자(徐子)가 맹자에게 공자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묻는 장면에 대한 글이 나온다.
맹자는 깊은 샘에서 솟아나온 물은 밤낮없이 흘러내려 낮은 곳을 다 채우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앞으로 흘러가다가 마침내 바다로 빠져나간다. 근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7. 8월에 쏟아져내려 고인 빗물과 같다. 이 빗물은 도랑을 채울 수는 있지만 금세 말라버린다고 답했다.(68 페이지)
맹자가 말한 낮은 곳이란 웅덩이를 뜻한다. 한문으로 과(科)라 한다. 과는 과학의 과, 과거 시험의 과로 많이 알려진 글자다. 찰 영자를 써서 영과이후진(盈科以後進)이라고 쓰는 곳도 있고 영과이복진(盈科以復進)이라 쓰는 곳도 있다.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이라 쓰는 곳도 있다. '채운 후에 간다'나 '채우고 나서 다시 간다'보다 '채우지 않고서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 더 인상적이다.
공자는 큰 강물을 바라볼 때마다 항상 관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란 제자 자공의 질문에 물이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고 모든 것에 생명을 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덕(德)과 같고, 아래로 흐르면서 꾸불꾸불 돌지만 항상 같은 원리를 따르는 흐름을 보이는 것은 의(義)와 같고, 솟아올라 결코 마르지 않고 흐르는 것은 도(道)와 같고, 수로가 있어 인도하는 곳에서 내는 소리는 반항하는 울음소리 같고, 백 길의 계곡을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것은 용(勇)과 같고, 수평을 재는 자로 사용할 때는 법(法)과 같고, 가득해서 덮개가 필요 없는 것은 정(正)과 같고, 유순해고 탐색적이어서 가장 작은 틈으로도 들어가기에 찰(察)과 같고, 거치거나 들어가 선명해지고 정화되는 것은 선하게 되는 것(善化) 같고, 만 번이나 꺾여 흐르지만 항상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지(志)와 같다고 말했다.(53 페이지)
저자는 원천에서 솟아나온 물은 함부로 아무 방향으로나 흐르지 않고 일정한 수로를 따라 흐른다고 말한다.(72 페이지) 고대 중국인들은 살아 있는 어떤 것이 스스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을 물의 가장 매혹적인 특성 중 하나로 보았다. 맹자는 인간 본성이 선함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76 페이지)
이 말을 전하며 저자는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원리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원리들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77 페이지) ‘묵자(墨子)’에서 훌륭한 통치자는 인자한 통치자가 아니라 차별이나 상호 이익에 관계 없이 사랑을 베푸는 통치자로 나온다.(79 페이지)
노자가 물이 선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것처럼 공자는 논어 위령편에서 군자는 긍지를 지니나 다투지 않고 여럿이 어울려도 편파적으로 굴지 않는다(君子矜而不爭 羣而不黨)는 말을 했다.(84 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도가에서는 통치자가 압박에 양보하고 요구되는 어떤 형태라도 취하는 물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 반면 순자는 통치자를 그릇에 비유했다는 점이다.
장자는 물의 본성은 동요하지 않을 때 맑아지고 움직이지 않을 때 수평이 되지만 막혀 흐르지 못하면 맑아지지 못한다고 했다. 저자는 산은 정체(靜體)이고 강은 동체(動體)라 말한다. 원시 시대부터 산과 바다는 제사의 대상이었다. 하(河)라고만 표기하는 황하(黃河)는 갑골문에서 나타난 것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강의 영령이었다.(93 페이지) 저자는 가장 영향력 있는 산은 정(頂)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오악(五嶽)중 중심으로 한대 이후 황제가 매년 제사를 지내던 하남의 숭산(崇山)일 것이라 말한다.(93 페이지)
저자는 물은 인간 생명에 필요한 것이고 불은 인간 사회에 필요한 것이라 말한다.(96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물은 불을 끄고 불은 물을 증발시킨다는 점이다. 고대의 음양 이론에서 이 원리가 변해 상극 관계의 연속체가 되었다. 음양(陰陽) 이론은 우주의 이원적인 힘이 갖는 상징적인 이름으로 어둠<음; 陰>과 밝음<양; 陽>을 취한다. 어둠과 밝음은 물과 불보다 더 풍경과 연관되어 있다.(99 페이지)
이론적 구조 안에서 요소나 힘으로 물과 불을 논의한 최초의 유가 서적은 ‘순자(荀子)’다. 순자는 물과 불이 움직이는 것은 그들이 어떤 기(氣)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순자는 물과 불은 기는 가지고 있지만 생명은 없고, 풀과 나무는 생명은 있으나 인지 능력이 없고, 조류와 짐승은 인식 능력은 있으나 시비를 판단하는 느낌이 없고, 사람은 활기, 생명, 인식 능력, 그리고 시비 판단의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말했다.(100 페이지)
저자의 말 중 가장 중요한 말은 ”물은 생명의 근원이지만 수로를 따라 흘러야 한다. 만약 물이 수로를 넘어 땅으로 범람하면 그 결과는 죽음과 파괴다. 샘을 원천으로 하는 강들은 끊임 없이 흐르지만 짧은 시간에 식물을 회생시키는 빗물은 쉽게 메말라 버려 식물을 지속적으로 키울 수 없다,“(105 페이지)는 말이다.
맹자는 ”물을 관조하는 데에도 방법이 있다. 항상 물결을 보라. 해와 달이 빛날 때 그 광채가 항상 물건을 비출 것“이라고 말했다.(115 페이지) 또한 ”흐르는 모든 물은 웅덩이를 채운 후에야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군자도 도에 뜻을 두면 그 뜻을 이룬 후에야 돌파해나간다.“고 말했다. 물은 의지도 없고 행동하지도 않지만 자발적으로 아래로 흘러 땅의 형세 속으로 스며들며 고요할 때 스스로 맑아진다.(125 페이지)
고대 중국어 개념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기(氣)다.(136 페이지) 저자는 물은 다섯 숫자에 근거한 다른 상관 개념 구조에서 오행의 하나였다고 말한다. 물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오행으로 물을 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관건은 저자가 언급한 텍스트들을 직접 읽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순자(荀子)에 관심이 많이 감을 재확인했다. 다양한 문헌둘을 물의 관점으로 노고를 아끼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