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택 교수의 ‘미적분의 쓸모’에 ‘어떤 등산로를 택하더라도 정상에 오르는 것은 매한가지인 것처럼 상태량은 현재의 상태에만 의존하며 과거에 어떤 경로를 지나왔는지와는 무관하게 결정된다. 얼음이 녹아서 된 따뜻한 물인지 뜨거운 물이 식어서 된 따뜻한 물인지(과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사라 알란의 말이 생각난다.

 

그녀는 ‘공자와 노자 그들은 물에서 무엇을 보았는가’에서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원리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원리들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다. 사라 알란이 세운 가설은 고대 중국 철학자들이 자연과 인간 현상에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는 것이다. 맹자는 물이 아래로 흐르듯 인간의 본성도 선을 향한다고 말했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순리이듯 선을 향하는 인간의 마음도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그러나 선을 지향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우리는 당위를 말하는 것이리라.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나는 물이 아래로 흐르듯 인간의 본성도 선을 향한다는 말보다 물이 움직이듯 사람의 마음도 늘 무엇인가를 지향한다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정희성 시인은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는 말을 했다. 그렇다. 흐르는 것은 또는 움직이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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