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인문학 - 생명의 근원에서 권력의 상징이 되기까지, 역사와 문학, 신화와 과학으로 살펴보는 물 이야기
베로니카 스트랭 지음, 하윤숙 옮김 / 반니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베로니카 스트랭의 ‘물의 인문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지식의 숲을 종횡무진 엮어내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로 만든 인상적인 책이다. 이 책에서 내 관심을 더 끈 것은 인문학보다 자연과학적 지식이었다. 지질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가 “우리는 발밑에 있는 흙보다 머리 천체의 움직임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말을 했지만 그간 나는 지질학이나 토양학보다 천문학이나 물리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같은 차원에서 그간 나는 물(베로니카 스트랭이 다룬 대상)도 인문학에 초점을 두고 보아왔다. 그런데 책에서 내 눈길을 끈 부분은 지하수와 화석수 이야기다. 물은 지표 아래 다양한 층에 저장되어 있는데 토양의 틈과 작은 암석의 빈 공간에 물이 가득 차면 이 지점을 지하수면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빙하가 확대되고 후퇴하는 과정을 통해 쌓인 화석수가 지하수의 대부분을 이룬다고 한다.(39 페이지)

 

대부분의 비는 육지보다 넓은 바다에 다시 내리므로 지하수의 과잉 취수는 해수면 상승에 일정 부분 기여한다. 모든 생물군은 공기, 토양, 세포들을 거쳐 가는 물의 이동에 의존한다. 모든 것은 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식물군과 동물군은 물로 연결된 초바다(超바다; hypersea)를 구성한다. 내가 이 책에서 배운 학문 중 하나가 수문학(水文學; hydrology)이다. 여기서 다시 거론하게 되는 것이 앞에서 이미 언급한 천문학이다.

 

그렇다면 지문학(地文學)도 있지 않을까? 검색해보니 지문학이란 지구과학 영역까지 포괄하던 자연지리학을 이르던 말이다.(천문학, 지문학, 수문학, 그리고 인문학..) 물은 생명 유지 수단일뿐 아니라 침략적인 것이기도 하고 부적절한 물질을 운반하는 주된 매체이기도 하다.(49, 50 페이지) 물의 순환적 이동 과정에서는 창조성과 엔트로피가 미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물은 지식과 같은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물이 천천히 흐르고, 스며들고, 퍼지고, 넘쳐 흐르고, 뒤덮고, 심지어는 세뇌하기도 하는 것처럼 지식은 지혜의 샘에서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순진무구한 상태를 오염시키거나 타락시키며 독을 퍼뜨리거나 혼란스럽게 만든다. 인간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물의 수많은 이동을 관찰하고 이에 관념을 부여할 뿐 아니라 현상학적으로 물의 이동을 경험하기도 한다.(66 페이지)

 

강은 시간과 공간을 따라 변해가는 생명의 이동을 완벽한 비유로 표현한다. 훼손되지 않은 산비탈에서 샘솟아 나온 강물은 세차게 휘몰아치는 에너지와 폭포와 급류의 형태를 띠면서 풍경에 활기찬 작용을 가한다.(78 페이지) 본격적인 관개(灌漑) 시작의 가장 큰 이유는 벼농사 때문이다. ”관개 기술이 급성장하면서 인간 사회의 지도자들은 점차 신격화되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왕의 선정을 관개 사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은 사막을 비옥하게 만드는 물 공급자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물의 창조적 힘이 현실에 나타난 화신으로 여겨졌다.“(113 페이지)

 

초기 유대교 - 기독교와 아랍의 문헌에는 다양한 신과 예언자들이 밀려나고 어디에나 있는 전능한 존재, 결국 한 명뿐인 남성 존재만이 그 자리에 남는 이행 과정이 나와 있다. 두 종교적 전통에 나오는 고대의 홍수 이야기에는 물의 혼돈과 무질서 개념은 계속 유지되지만 전능한 신의 관점에서 이를 재구성함으로써 벌을 내린 다음 용서해주는 힘을 표현하고 있다.(117 페이지)

 

더욱 규모가 크고 강대해진 사회에서 나타난 여성적인 것(물질세계)과 남성적인 것(문화)이라는 양분화된 인식에서는 혼돈의 물(다스릴 수 없는 물)과 좋은 물이라는 이원적 인식이 나타났고 세심하게 물이 공급되고 잘 관리된 농경지의 모습이 점차 일신교적 종교 문헌에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117, 118 페이지) 자연, 그 중에서도 특히 물을 여성으로 개념화하는 과정은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체제에서 그리고 물질세계, 특히 물과의 관계에서 남성의 권위를 선언하는 것과 나란히 진행되었다.

 

그 결과 관개 사업은 인간 지배의 새로운 우주론적 견해를 낳았고 더욱 힘을 얻었다.(121 페이지) 치수 사업은 인류가 지구상의 다른 종과 맺는 관계를 가장 많이 변화시켰으며 인간의 작용 가운데 으뜸이라고 할 만한 상당히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122, 123 페이지) 도시는 반드시 물 공급이 원활한 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 런던의 경우 하수구로 알려진 '위를 덮지 않고 터놓은 수로'에 가정용 요강의 내용물, 쓰레기, 재뿐만 아니라 가축 분뇨까지 버렸다.

 

하천 옆에 사는 사람들은 분뇨가 곧바로 하천으로 떨어지도록 화장실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물 대신 양주, 에일, 맥주, 포도주 등을 마셨다.(152, 153 페이지) 13세기에 국왕은 대형 수도관을 건설한 이후 멀리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수많은 수로를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인이 심은 원소의 과학적 분석이라는 씨앗이 18세기에 결실을 맺었다. 이 열매를 바탕으로 다음 세기 동안 물질적인 것으로 형성된 사고방식은 세계를 공학으로 설계하는 보다 전문적 능력과 결합되어 근본적으로 물과 생태계를 관리 대상으로 보는 관계를 낳았다.(163 페이지)

 

물은 늘 사색과 감정 이입의 대상이 되어 왔고 수자원 기술의 발달은 그 미학적 특성을 찬미하는 예술적 표현을 수반했다.(174 페이지) 저자는 인간의 개입 가운데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아마도 댐만한 것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생명의 물질이 흐르지 못하도록 막아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물길을 내는 것보다 명확하게 지배를 표현할 수 있겠는가, 란 말이다.(189 페이지) 저자는 인간이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순환하며 영양분을 운반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며 다른 물질을 흡수하고 온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유동적 능력을 지니는 물(민물과 바닷물)에 가하는 갖가지 압박을 우려한다.(202 페이지)

 

물의 흐름을 바꾸어 인간 활동에 전용한 결과 수질에 커다란 문제가 생겨 세계의 가난한 지역에서 매일 1만명에서 1만 4천명의 사람이 수인성 질병으로 죽는다. 플라스틱 생수병 하나를 만드는 데 그 용량의 여섯 배나 되는 물이 들어간다.(211, 212 페이지) 물이 다른 물질을 분해하고 운반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모든 식물군과 동물군이 오염의 폐해를 입는다는 의미다. 저자는 대다수 도시는 재활용 물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전에 수많은 사람의 몸을 거쳐온 물을 마신다는 것은 최대한 좋게 생각해서,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한다.(222 페이지)

 

이 부분에서 NASA 우주선의 물 재활용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우주선 안의 모든 동물 - 인간과 쥐 등 - 에게서 나온 거의 모든 물 입자를 이용한다. NASA의 정수 처리 전문가 레인 카터는 역겹게 들릴지는 몰라도 우주정거장의 정수기에서 나가는 물은 우리가 지구에서 마시는 물보다 훨씬 깨끗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51 페이지) 우리가 마시는 물 성분의 거의 100%가 공룡의 몸을 통과한 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를 티라노사우르스수(水)라고 한다.

 

10여년전 영국 지리학자 앤서니 앨런이 음식과 가공물질에 얼마나 많은 물이 들어가는지 계산하는 법을 만들어냈다. 커피 한 잔에 대략 140리터의 가상의 물(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식품이나 제품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 사용되는 물)이 필요하고 500그램의 치즈에는 2,500리터, 1kg의 쌀에는 3,400리터, 청바지 한 벌에는 5,400리터, 자동차 한 대에는 50,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234 페이지)

 

물발자국이라는 개념도 있다. 생산과정에 사용되는 물이 남기는 공간적 자리를 의미한다. 청색 물발자국은 지역 환경에서 얼마나 많은 물을 가져다 썼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고 회색 물발자국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염 폐수를 만들어냈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저자는 우리는 사회적, 물질적 행위들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업과 환경을 경쟁적 시장에 맡겨두는 것을 반대한다.

 

데릭 복이 이런 말을 했다. ”교육이 비싸다고 생각된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삶을 한 번 살아보라. 지속가능성을 이룩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되면 어디 한 번 그것을 포기하고 살아보라.” 저자는 많은 대항운동은 사회적, 생태학적 정의를 향한 열정 그리고 감각과 영혼까지 아우르며 물과 관계를 맺으려는 열정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 사이를 흐르며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물을 보며 각자 생각하는 바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너무도 마구 다루어졌다는 점이다. 저자가 강조한 초(超)바다란 개념을 공부하는 것이 어떨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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