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군의 경로당 수가 107개라고 한다. 관계자께 들은 이야기다. 오래전 연천읍 통현리에서 일로당(逸老堂)이라는 현판을 본 기억이 나 ”요즘은 경로당이라 하지 않고 일로당이라 하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렇지 않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검색해보니 연천읍 통현리 일로당(逸老堂)이란 글이 떴다.
문제는 한 군데서 본 일로당이란 명칭을 근거로 그런 질문을 했다는 점이다. 더 찾아보니 장자(莊子)가 하늘이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일로란 편안한 노인이란 의미다.
전북 고창군에 일로당(逸老堂)이라는 정자가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일로당(逸老堂)이라는 호를 쓴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돈녕부사를 지낸 양관(梁灌; 1437~1507)이란 사람이다. 궁금한 것은 이름에 물댈 관이란 글자를 쓴 이유다.
요즘 읽고 있는 베로니카 스트랭의 ‘물의 인문학’에 관개(灌漑) 이야기가 나온다. ”관개 기술이 급성장하면서 인간 사회의 지도자들은 점차 신격화되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왕의 선정을 관개 사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은 사막을 비옥하게 만드는 물 공급자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물의 창조적 힘이 현실에 나타난 화신으로 여겨졌다.“(113 페이지)
특이하게도 관(灌)이 내림굿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나는 '벚꽃과 그리스도'란 책에 실린 ‘엔도 슈사쿠와 물의 성사(聖事)‘를 읽다가 장마비를 의미하는 매우梅雨와 안개비를 의미하는 무우霧雨를 알았다.(매화 매와 비 우를 쓰는 글자가 장마비라니..아닌 게 아니라 매; 梅에 장마라는 의미가 있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엔도의 작품에서 인간은 물을 통해 생과 죽음의 영역을 왕래한다. 또 물을 통해 인간은 다른 종교와도 만나게 된다. 물은 신의 은총이 인간에게 부어지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45 페이지) 아, 관불식(灌佛式)이 있지. 이제 이런 관념적 상상은 그만 접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