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철학자 ’노자(老子)‘의 말이 소환되는 경우는 아주 제한적이다. 세상에서 물은 가장 상위의 선(善)의 표본이란 의미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할 때 정도다. 일정 정도 의미가 있지만 상선약수만을 이야기한다면 클리세를 반복하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더구나 지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상선약수를 언급하는 데 그친다면 너무도 상투적이다.

 

의문이라도 드러내 함께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두보(杜甫)의 ’강한(江漢)‘이란 시가 있다. 강한이란 장강(長江)의 강과 한수(漢水)의 한을 합친 말이다. 우리의 한강과 아무 관련이 없지만 왜 한강이 아니라 강한인가, 란 궁금증에 해결책으로 시를 읽을 수도 있으리라.

 

이 시에 “양자강과 한수, 향수에 젖은 나그네, 하늘과 땅, 한 쓸모없는 선비”라는 구절이 있다. 싯다르타가 쉼 없이 흘러가는 물을 보며 깨닫는 과정을 그린 헷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연상하게 한다. 두보는 회한 또는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물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 그린 것이 아닐지?

 

주로 재인폭포를 드나들고 가끔 베개용암과 백의리층에 들러 물을 바라볼뿐인 나 역시 새 정서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을 잡아 리얼하게 표현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폭포 인근에 댐이 생겨 마을 입구까지만 운행하는 버스에서 내려 폭포까지 20여분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을 만난다. 내가 하는 생각, 떠오르는 생각 등...

 

하지만 폭포를 바라보며 갖는 생각이나 느낌에 비하면 볼품 없다. 이태호 교수의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같은 책을 비롯 조선의 학인들이 감행한 여행을 다룬 책을 보려고 한다. 이태호 교수의 책에는 박연포도(박연폭포 그림)를 겸재 정선의 실경(實景) 표현 방식으로 정의한 글이 있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재인폭포 이해를 위해 치르는 의식 같은 것이다.

 

5월에 세 차례(13, 20, 22일) ’연강임술첩 - 그 속에서 연천 풍경을 노닐다’ 공부가 예정되어 있다. 겸재가,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재인폭포에 대해 다루지는 않았지만 좋은 기회다. 연천은 어떻든 용암이 만든 검은 돌의 고장이다.

 

’제주 과학 탐험‘이란 책에 “용암이 식는 이유는 공기와 접촉했기 때문이다. 만약 용암이 물과 만났다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베개용암을 만들었을 것“(218 페이지)이란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주상절리와 베개용암의 차이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연천 재인폭포 근처에 비가 와야 물이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비와야 또는 비온 뒤 폭포가 있다. 이 부분에서 제주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연천이 내륙의 제주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주에 비가 오고 나면 만날 수 있는 엉또 폭포가 있다. 엉은 절벽이나 벼랑을 의미하고 또는 입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엉은 엉알 해안이라는 말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엉알의 알은 아래라는 의미다. 마이클 브라이트는 ’손 안의 지구과학‘에서 폭포를 침식에 잘 견디는 암벽에서 물이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라 정의했다.(105 페이지) 이런 정의를 눈사람 만들 듯 크게 해 의미 있는 생각으로 이어가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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