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實, 세계를 만들다 - 실천을 둘러싼 철학 논쟁들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16
김선희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아시아 지성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실(實)이란 개념은 언제나 전환의 논리. 변화의 지향점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요 논지다. 실(實)을 주제로 책을 쓸 때 어려웠던 점은 학자들마다 큰 변별점을 찾기 어려운 일반론이 반복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은 인간의 인식 여부와 관계 없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성리학자들은 자주 우주의 근원적 진리를 뜻하는 이(理) 앞에 실(實)을 붙여 실리라 표현했다. 이가 공허한 개념이 아니라 실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공자는 명(名)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이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사물이나 직함의 명칭을 바로잡고 정리하겠다는 의미나 사회적 준거틀을 질서 있게 정리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서 사회적 준거와 틀인 개별적인 명칭과 명분이 그에 합당한 분명하고 의미 있는 실질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의미다.(21, 22 페이지)

 

공자는 명과 실의 관계에서 명을 사회가 따라야 할 표준의 이념으로 보고 실을 그에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 이후 유가(儒家)에게 명과 실의 일치 문제는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정치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제재라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성격을 띤다.

 

명과 실이 함께 다루어지지 않은 ‘논어’와 달리 ‘맹자’에는 그 둘이 하나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맹자는 공자와 달리 명과 실의 관계에서 명의 보편성이나 안정성보다는 실의 차원을 더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서 맹자가 공자가 제안한 정명 즉 올바른 이름과 적절한 명분의 사회적 실현을 중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차라리 맹자는 실의 의미를 더 강화하고 세분화했다고 할 수 있다. 노자는 한정된 인간의 사유와 인식 능력에서 비롯된 언어로는 항상 변화하는 우주의 실재를 포착할 수 없다고 보았다. 유가 입장에서 정명(正名; 명칭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의무를 부과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한 통치법이지만 노자 입장에서는 통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장자는 이름을 실질의 손님이라 표현했다. 순자에게 이름과 그에 맞는 실질은 사회 정치적 질서의 토대였다. 명과 실에 관한 순자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름을 제정하여 실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름이 규정되지 않으면 사물의 명과 실이 뒤얽혀 사물의 실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순자는 명을 고정불변하는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 과정과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기능적인 규약들로 이해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 규약을 혼란 없이 지키기 위해서는 이름이 반드시 실제에 대한 이해와 고찰을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 성리학자들에게 실은 이론적으로 긴장을 유발하는 개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을 실학이라 불렀다.

 

이는 조선 후기의 새로운 학풍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리학의 입장에서 공리공담에 치우친 불교나 도교 등 경쟁하는 학문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하던 일종의 자기 지칭이었다. 성리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이를 실리(實理; 인의예지라는 근원적 가치)라 부르고 이를 담고 있는 마음을 실심(實心)이라 불렀다.

 

이는 세계를 구성하는 보편 원리이자 도덕적인 가치다. 성리학에서 실(實)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 세계이자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참된 원리 즉 세계가 올바른 방식으로 살재한다는 이념이기도 하다, 성리학에서 실은 성(誠)이기도 하다. 성리학이 성즉리를 말했다면 양명학은 심즉리를 말했다.

 

양명학의 핵심적 이론 중 하나는 사람의 마음 밖에 별도로 형이상학적 원리이자 도덕적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곧 도덕 원리라는 심즉리 이론이다. 성즉리라는 성리학의 이론은 왕양명이 보기에 이와 기, 본성과 마음을 이원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마음과 본성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왕양명은 마음과 그 마음의 일상적 작용이 곧 도덕적 원리의 실천이라 보았다. 왕양명을 계승했거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추상적인 원리로서의 이를 사변적으로 규명하려는 태도를 텅 비어 있는 학문 즉 허학(虛學)이라는 말로 비판하며 이미 도덕적 기준과 실천적 능력을 담고 있는 마음의 현실적 실천을 강조하는 자신들의 학문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실학이라고 주장했다.

 

명말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일군의 학자들은 더 이상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실제의 일에서 실질적인 증거들을 확보해 실질적인 실천과 개혁을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후기의 특별한 학풍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전 실학은 시나 산문을 짓는 문학적 글쓰기와 다른 경학을 의미했다.

 

물론 경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실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경서를 텍스트로 하는 과거 공부조차도 일종의 실용적 기술로 치부했다. 오직 성리학의 근본적 이념에 대한 진정한 탐구만이 실학이었다는 의미다. 율곡 이이만큼 실을 중시하고 다양한 개념을 활용한 조선 유학자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홍대용이 스승인 미호 김원행으로부터 배운 학문은 성리학이었다. 김원행은 조선 후기 호락논쟁 즉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를 두고 벌인 논쟁에서 인성과 물성이 같다고 주장(낙론洛論; 인물성동이론)한 핵심 인물이다. 권상하, 한원진 등은 인물성이론(호론; 湖論)을 주장한 사람들이다. 홍대용은 실심에서 실사로, 실사에서 실지로 향하도록 실의 태도를 모든 영역에 확장하고자 했다.

 

성리학과 대별되는 역사적 실체로서의 실학이 존재하는지, 그 개념이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쟁은 완결되지 않았다.(83 페이지) 실을 강조하는 학문적 경향과 관련하여 다른 유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약용이 성리학의 이론적 토대인 이 개념과, 이가 곧 우리의 본성이라는 이론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정약용의 관점에서 실심은 마음의 본체가 아니라 도덕적인 각성을 통해 매순간 실천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실학은 국가를 새롭게 개조해줄 서양 과학의 다른 이름이었다. 실, 그리고 실학은 통시대적인 개념이었다. 어느 시대고 나름의 학문으로 존재했다는 의미다. 일제 강점기 일군의 학자는 실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조선 후기에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학풍이 존재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현재 실학자로 분류된 학자들의 사상이 모두 사회개혁적인 것만은 아니며 더 나아가 반성리학적이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94 페이지) 성호 이익은 서양 과학 지식을 높게 치고 실용적인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조선의 주자로 추앙받았던 퇴계를 평생 존숭했으며 그의 학문을 계승하고자 노력했다.

 

천문학, 수학, 지리학, 의학, 기계 제작 등 사변적인 이론논쟁보다 백성의 삶에 유용한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한 것을 곧바로 근대성의 추구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더구나 실학과 성리학을 대척점에 있는 학문으로 규정하는 것은 20세기의 관점이다. 당시 조선 후기 학자들에게 성리학과 실학 사이에 강력한 긴장이 존재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문제는 실학에 대한 연구에 지나치게 근대성이란 틀을 적용하려는 연구 태도다. 맹자는 먹이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가축으로 대하는 것이고 사랑하지만 공경하지 않는 것은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어 공경은 물질적인 것이 오가기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그 실질이 없다면 군자는 헛되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다.

 

실이라는 개념을 통해 진실과 진정성이 없는 관계를 비판한 것이다. 순자는 사회적 혼란의 원인을 명과 실의 불일치 또는 불안정에서 찾았다. 순자는 실보다 명을 중시했다. 공자는 실질적 내용이 겉모양보다 뛰어나면 투박하고 겉모양이 실질적인 내용보다 뛰어나면 번지르르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채(文彩)와 실질이 적절히 조화된 뒤라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점은 공자가 말의 내용에만 마음을 쓴 것이 아니라 표현에도 마음을 썼다는 사실이다. 공자가 지나치게 말을 잘하는 사람을 경계했다면 순자는 말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군자의 본질로 여겼다. 물론 순자의 의도는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선왕과 예악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장자는 치우치지 않지만 양쪽의 평균을 구하지도 않는 조화의 상태를 천균(天均)이라 부르고 그 천균에서의 행위를 양행(兩行)이라 불렀다. 성리학의 관점에서 명과 실은 어느 한쪽도 폐기할 수 없는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송대 성리학자들에게 명과 실은 상호 긴장관계에 놓여 있을뿐 아니라 형식과 내용처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주희의 제자가 주희에게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논어’의 구절에 대해 물었다. 이 구절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유사하지 않느냐고 묻자 주희는 불교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여기고 삶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면 얼마든지 삶을 포기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유학의 도는 삶을 하찮게 여기거나 죽음을 중시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도를 깨닫는 과정에 중점을 둔다고 답했다.(159 페이지)

 

유학은 실의 학문, 불교는 허망한 학문이라는 말이다. 성리학적 맥락에서 실리(實理)와 실심(實心)은 우주의 근원적인 이치가 인간과 아무 관계 없이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인 마음에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개념쌍이다.(161 페이지) ‘중용장구’에는 치우치지 않음은 중(中)이고 변치 않음은 용(庸)이라고 한다는 구절이 있다.

 

‘논어집주’에는 명성을 추구하는 일과 잇속을 추구하는 일은 고상함과 비루함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탐욕스러운 마음이라는 것은 같다는 말이 있다. 주희, 정이천, 윤돈은 한결 같이 명과 실을 대비시키며 명예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실질에 힘쓰려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주자어류’에는 ”요즘 공부하는 이들이 실지에 발을 붙이지 않고 항상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다. 비유하자면 밥이 있는데도 스스로 먹으려고 하지 않고 다만 문 앞에 펼쳐놓고 자기 집 안에 밥이 있다고 남에게 알리려고만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생각을 깨끗이 없애야 비로소 발전이 있다.“는 구절이 있다. 착실(着實)이란 실지에 발을 붙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진실하고 절실하다는 의미다. 왕양명은 성리학이 자기 내면의 완전성과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자꾸 외부에서 탐구한 이치를 통해 자기 마음을 보완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식이라면 결국 외부 세계와 내 마음이 둘로 나뉜다는 것이다.(174 페이지)

 

왕양명의 생각은 근원적 이치가 나의 마음과 관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마음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양지(良知)란 순간적인 결단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내 마음의 등불이자 지도를 의미한다. 양지는 내 마음 안에 들어온 천리라는 것이다.

 

왕양명이 양지를 강조한 것은 외부에 이치가 객관적으로 존재해도 내 마음이 스위치처럼 켜져서 외부 사물과 접촉하지 않으면 결국 그 이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76 페이지) 후대 학자들은 왕양명의 주장을 주관 유심주의 즉 외부의 객관적 세계를 부정하고 마음만을 진실한 것으로여겼다고 비판하지만 그의 의도는 외부 세계와 내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 것, 객관 세계와 주관 세계가 양분되지 않은 것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추사는 실사구시를 유학의 학문적 이념으로 세우고 이와 다른 학풍들 즉 노장, 불교, 육상산과 왕양명의 학술을 거짓된 학문 즉 허학이라 비판했다. 시서화에 능했던 뛰어난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김정희 역시 요순우탕, 문무주공과 같은 고대 유학의 성인들을 높이고 그들의 가르침에서 진리를 도출하는 일을 진정한 실사구시로 파악하는 유학자였다.(206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