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대한 권리 -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시대 리커버
강현수 지음 / 책세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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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수의 ‘도시에 대한 권리’는 전 세계적으로 진보적 도시 정책의 핵심 의제가 되어 가고 있는 개념인 도시에 대한 권리에 대해 다룬 책이다. 이는 특정 도시 공간을 이용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이해 충돌을 해결할 수 있는 개념이다.

 

1968년 68 운동이 프랑스를 휩쓸던 시기에 (68 운동의 진원지인 낭테르 대학의 교수였던)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책에서 처음 제기된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 누구나 나이, 성별, 계층, 인종, 국적, 종교에 관계 없이 도시가 제공하는 편익을 누릴 권리, 도시 정치와 행정에 참여할 권리, 자신들이 원하는 도시를 스스로 만들 권리에 대한 개념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많이 낯선 개념이다. 르페브르는 지금의 사회를 도시사회로 보고 논의를 풀어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촌 대신 도시에 모여 살고 있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사람들의 존재 방식, 사고 방식, 행동 방식이 도시적으로 바뀌었고 도시가 아닌 농촌까지도 도시 사회가 되었기에 도시와 농촌의 물리적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르페브르는 마르크스가 규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력과 생산 관계 사이의 모순이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시 성장을 통해 극복되었다고 보았다. 르페브르는 1) 도시에서 자본의 이윤을 위해 봉사하는 교환 가치가 사람들의 사회적 필요를 담고 있는 사용 가치를 압도하고 있으며, 2) 거주의 의미가 단순히 거주처의 의미로 축소되고 있으며, 3) 당시 프랑스 사회에는 중요한 도시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르페브르에게 도시는 다양한 도시 거주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와 연관되는 일종의 집합적 작품이었다. 르페브르는 작품은 사용 가치이고 제품은 교환가치로 정의하며 도시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 즉 거리와 광장, 건축물, 기념물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축제라고 보았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가 시민들이 서로 만나고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객관적 필요에서 비롯된다. 도시 공간을 재산 즉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상품으로 보는 개념은 전유의 권리와 대립된다. 전유의 권리란 공간에 접근하고, 공간을 점유하고 사용할 권리, 사람들의 필요에 부합하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권리를 포함한다.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통해 도시 생활이 변혁되고 나아가 사회가 변혁되며 시간과 공간도 변혁된다고 보았다. 르페브르는 사람들이 도시 중심부로부터 배제되고 도시 공간이 기능별, 계층별로 격리/ 단절되는 현상을 비판했다.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의 권리다. 교환 가치보다 사용가치, 사유 재산권보다 전유의 권리를 강조하는 도시에 대한 권리는 자본주의의 핵심 논리에 대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도시 프로젝트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인정하면서 그 속에서 가능한 개혁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엔 산하 기구인 유네스코와 유엔 해비타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운동이 대표적이다.

 

현재 인정받고 있는 도시에 대한 권리는 소수의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들에게 한정되고 있다. 하비, 퍼셀 등은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가 완전히 실현되려면 사회관계의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요한 점은 도시에 대한 권리는 개인적 권리 즉 자유주의적 권리로 해석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빈곤, 사회적 배제, 도시 폭력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점령하라 운동(월가를, 여의도를...)이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지만 지향하는 바는 몇 가지 점에서 겹친다. 점령하라 운동은 도시의 중심부 공간이나 상징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령하는 운동이다. 그 운동은 사람들이 함께 토론하며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운동이기도 했다.

 

인종, 종교, 성별, 연령, 국적, 문화, 성적 취향 등의 차이로 인해 주류 사회에서 배제되는 개인과 집단들에 대한 권리가 도시에 대한 권리에 포함된다.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도시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다.

 

권리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거나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투쟁을 통해 진화, 발전해온 것이다. 근대적 인권 선언의 효시인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는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후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프랑스에서는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이 자국민들 즉 프랑스 국민의 자격을 갖춘, 프랑스 시민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에게만 보장되었다.

 

같은 국민이라도 빈곤층, 여성 등은 재산이 있는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다. 각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보편적인 시민권을 부여받은 것은 노동운동, 여성운동 등 사회 각 계층의 투쟁이 시작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사적 소유의 권리를 불가침의 권리인 자연권 즉 인권으로 인정함으로써 인권이란 자본을 소유하고 사적 소유의 자유를 추구하는 부르주아의 권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도시 단위에서 권리 주장이 유용한 것은 왜일까? 인본주의 지리학자 투안(Yi ? Tuan)은 사람들이 공간을 더 잘 알게 되고 공간에 자신의 가치를 부여함에 따라 공간이 장소가 된다고 보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치를 부여하는 곳 즉 장소들은 균질하지 않고 각기 다르다. 도시가 강조되는 것은 현대인의 일상생활의 장소가 도시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실천 운동의 장소다.

 

막스 베버가 강조한 것처럼 서양 역사에서 도시의 중요한 특징은 정치적 자율성이다. 유럽의 역사에서 도시가 중세의 봉건적 구조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인간들을 배출한 장소였기 때문에 시민의 의미는 도시 거주자에서 자유와 권리를 가진 주체적 인간으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근대적 의미의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시민이란 말은 근대 국가의 국민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도시 문제로 발현되지 않는 세계 문제는 별로 없다. 도시는 세계의 문제가 집중되는 장소이자 그 문제가 해결되는 장소다. 여성주의자 아이리스 영은 타인에게 동화되기보다 낯선 사람들을 인정하고 차이에 대해 개방적인 비억압적 도시에서 이상 사회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세계화 시대에 차이성은 소멸될 우려가 높다. 그래서 장소의 차별성이 경쟁무기가 된다. 세계화 시대에도 특정 장소에 기반을 둔 도시나 지역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르페브르가 말한 도시란 물리적 공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도시적 생활양식을 상징한다. 그가 말한 도시에 대한 권리란 기존 도시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미래 도시에 대한 권리이며 전통적 의미의 도시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게층적 구분이 사라지는 도시 사회에 대한 권리다.

 

도시에 대한 권리가 미래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말은 우리사회의 도시에 대한 권리 억시 현재 존재하는 실정법상의 권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권리를 꿈꾸는 상상력을 요구한다. 르페브르는 도시 거주자들뿐 아니라 도시 이용자들도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좋은 의미이지만 상당히 추상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구체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주의적 비판, 호모 사케르를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등이 제기되지만 도시에 대한 권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2009년 용산 참사는 유엔이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이기에 하지 말라고 거듭 경고한 강제 철거 관행이 촉발한 참사였다. 저자는 전면 철거 재개발은 인권에 대한 엄청난 침해라고 규정한다.

 

도시에 대한 권리 중 하나가 주민들의 참여권이다. 1989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시작된 주민 참여 예산 제도는 세계 각지로 급격히 퍼져나갔다. 68 운동 당시 가장 유명했던 구호는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적 조건 즉 현재의 물질적, 제도적 조건과 각 주체들이 지닌 가능성과 역량을 고려한 상상력은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정당한 논리나 도덕적 가치가 없는 권리 주장은 기득권층의 특권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자이메 레르네르의 도시 침술이 도시에 대한 권리와 부합한다. 큰돈을 들이는 대규모 프로젝트 대신 작은 비용으로 침을 놓듯 작은 변화를 주어 영향을 확산시키는 방식이 도시 침술(urban acupuncture)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에 대한 가장 큰 걸림돌은 정당한 권리 주장과 부당한 특권 요구를 명쾌하게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지점들이 무수히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총체적 삶의 터전이 아니라 거주지에 불과하다.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는 모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 때만이 모든 이에게 뭔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사에 대한 권리는 인권보다 더 구체적일 수 있다. 내가 도시에 대한 권리에 대해 갖는 관심은 간헐적으로 도시(특히 서울)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갖는 관심이다. 나는 서울이 걷기 좋은 도시,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는 도시, 도시에 대한 권리가 잘 지켜지는 도시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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